대세 정밀의료로 가는 길, 풀어야 할 숙제는?
김지현 교수 “NGS 검사 데이터 통합·약제 사용제한 완화 등 필요”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나에게 꼭 맞는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특히 암 또는 희귀질환과 같이 증상이 심각하거나 질병의 원인·치료법을 찾기조차 어려운 환자들 입장에선 바라마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이렇듯 개인의 유전체 정보에 기반해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는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 바람은 암 치료 분야를 중심으로 국내에서도 거세다.
그러나 국내에서 정밀의료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임상 현장과 제도 간 간극, 필요 인력 부족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대표적인 정밀의료 전문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지현 교수(정밀의료센터장)는 “정밀의료의 필요성을 느끼면, 공부도 새로 해야 하고 막혀 있는 제도도 풀어야 하는 등 숙제가 한 보따리”라면서도 “정밀의료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이고 우리가 필연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김지현 교수에게 국내 정밀의료 상황과 과제에 대해 들었다.
- 정밀의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폭 넓게는 개인의 유전체, 생활 환경 등 모든 정보를 총망라하고 빅데이터를 분석해 질병을 예측하는 의료를 말한다. 질병 발생, 치료 반응, 예후 등을 예측해 보다 정교하게 질병을 예방, 진단, 치료하는 개념이다.
정밀의료는 질병 진행 전 예방과, 고위험군 환자의 우선 치료 등 개개인의 특성을 반영한 치료로써, (건강보험)재정 부담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정밀의료는 Prevention medicine(예방의료), Prediction medicine(예측의료), Personalized medicine(맞춤의료), Participatory medicine(참여의료) 등 4P라고도 부른다. 이전까지의 치료는 예측, 예방, 맞춤 등 3P가 주였지만, 정밀의료는 환자가 치료에 참여하는 참여의료가 더해졌다. 공급자에게 독점돼 있던 의료 정보를 치료 주체인 사용자, 즉 환자에게 공개하는 방식이다.
특히 암 치료에서 정밀의료는 먼 얘기가 아닌 현실이다. 암 정밀의료는 치료에 초점을 맞춰 각각의 암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치료를 추천하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시스플라틴 등 백금 기반 화학항암제로 모든 암을 치료하던 예전과 달리, 유방암, 위암 등 암종별 항암제가 등장했고, 이후 각 암을 유형별로 구분해 이에 맞는 치료를 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암을 각기 치료하고 있는 것이다.
- 정밀의료에서는 분자종양보드(Molecular Tumor Board, MTB)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알고 있다. 분자종양보드의 개념과 필요성에 대해 설명해달라.
분자종양보드란 종양내과 의사, 생물정보학자, 병리학자, 코디네이터 등 각 분야 전문가가 모여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를 찾는 과정이다. 해당 환자의 유전자 변이가 의미 있는지, 그보다 앞서 검사가 제대로 됐는지 등을 판단하고, 사용 가능한 치료제, 임상시험 참여 가능성 등 치료법을 찾는다. 분자종양보드는 후배 및 동료들과 서로 배울 수 있어 과정 자체가 교육적이다. 따라서 치료 목적으로도 필요하지만 교육 목적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다만 한 병원에서 각 분야 전문가가 모인 ‘드림팀’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이상적으로는 분자종양보드를 거쳐 진단을 내려야 하지만, 국내 환경에서는 이를 실현하기 어려워 진단 후 일부 특이한 사례 또는 어려운 사례를 모아 논의한다. 필요성만큼 활성화되지는 못해 대한종양내과학회는 가이드라인을 내는 등의 시도를 하고 있다. 학회가 여러 병원으로부터 구성원을 모집해 온라인으로 분자종양보드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분자종양보드는 ‘무료 봉사’다. 환자 앞에서 5명의 의사가 모여 다학제 진료를 하면 다학제 진료 수가가 있지만, 이들의 인건비에 훨씬 못 미친다. 수가 만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사례를 정리해서 올리고, 논의하고, 기록하는 인력도 필요하다. 다행히 환자가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시험용 의약품 치료목적 사용승인 제도를 이용하게 된다면 그 때도 엄청난 문서 업무가 발생한다. 이에 대한 수가는 전무하다. 지원 인력이 충분한 병원은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병원은 시도조차 어렵다.
- 정밀의료 하에선 임상시험도 기존과 달리 진행될 것 같다.
한 가지 암에 몇 천명을 모집해 임상시험을 진행한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유전자별, 바이오마커별 임상시험이 필요해 대규모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기 어렵다. 때문에 다른 형태의 임상시험, 다른 형태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산업계나 학계의 속도와 정부의 속도 간 간극이 크다. 최근 해외에서는 암종을 막론하고 유전자별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해당하는 전체 암종에 치료제를 허가하는 추세다. 반면 국내는 아직까지 암종별로 데이터를 요구해 개선이 시급하다.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의 경우, 미국에선 2017년 5월 MSI-H/dMMR 바이오마커가 있는 모든 암 환자에게 허가한 반면, 국내에선 2020년 8월에서야 MSI-H/dMMR 바이오마커가 있는 7개 고형암(자궁내막암, 위암, 소장암, 난소암, 췌장암, 담도암, 직결장암)의 2차 치료에 대해 허가를 했다. 미국에 비해 허가에 3년이 더 소요됐으며, 이마저도 하위 데이터가 있는 암종에만 허가해 정밀의료의 개념을 완전히 차용하지 못했다.
- 국내에서 정밀의료를 적용코자 할 때, 진단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진단 측면에서 (한 번에 여러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검사에 보험급여가 빠르게 적용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병원마다 NGS 검사 방법이 달라 각 병원이 각자의 데이터를 가지고 환자들을 치료한다. 정밀의료의 중요한 축 중 하나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질병 예측·예방인데, 한국은 국가 차원의 통합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지지 못해 안타깝다. 물론 데이터가 처음부터 모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통합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시작한다면 연구 역량 강화와 환자 치료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또 NGS 검사를 통해 결과가 나와도 약을 사용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실제로 그간 진단 경험이 쌓이고 많은 발전이 있었음에도 제한적인 약제 사용으로, 이를 활용하기 어려운 게 제일 안타깝다.
물론 국가에서 안전성이 증명되지 않은 약을 쓰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겠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제대로 된 임상시험을 진행하지 않고 판촉을 통해 약을 사용하게 하는 등 악용 사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소수 악용 사례를 막기 위해 약제 사용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안전 장치는 반드시 있어야겠지만 허가 제도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 국내에서 정밀의료 실현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국내에서 정밀의료를 진행할 땐 NGS 검사를 해도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결과가 나와도 약이 없거나, 환자가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없는 등 여러 단계에서 막힘이 있다. 유전자 이상도 나왔고 약도 있지만 제도로 인해 약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일부 의료진은 이에 좌절해 검사조차 하지 않으려고도 한다. 그렇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개인적으로도 치료제를 사용할 수 없는데 NGS 검사에 급여가 적용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유전자 이상을 NGS 검사를 통해 발견하고, 때마침 사용 가능한 치료제가 있어 환자가 좋아졌던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면 이를 계속해서 하게 된다. 환자 한 명 두 명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
분자종양보드 또한 답이 보이지 않아 어려울 수 있지만, 다른 해석을 통해 환자에게 맞는 신약 또는 임상시험을 찾고 환자가 호전되는 모습을 보면 정밀의료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낀다. 물론 그 후에는 공부도 새로 해야 하고, 막혀 있는 제도를 풀어야 하는 등 숙제가 한 보따리 떨어진다.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정밀의료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이고 우리가 필연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다. 조금씩 바꿔 나가면 5년, 10년 후에는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청년의사 (docdocdoc.co.kr) 김혜인 기자 khi@docdocdoc.co.kr 입력 2021.06.30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