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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안에 '별' 있다? 외면받던 조연세포, 과학청년 '도전장'

산포로 2023. 3. 9. 09:11

뇌 안에 '별' 있다? 외면받던 조연세포, 과학청년 '도전장'  

 

[뉴2030 ②]원우진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박사
모두 신경세포 볼 때 '별세포' 집중, 치매·류마티스 등 성과
"삽질 많았지만···미지영역 개척, 과학자로서 공적 기여하고파"
이창준 단장 따라 대전行 "교세포·치매기전 영역 세계적 수준" 

 

원우진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박사. 1989년생으로 올해 35살이다. IBS행을 택하며 2019년 대전으로 내려왔다. 현재 IBS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고 있다. [사진=원우진 박사 제공]
 
밤하늘의 별은 천문학자들에게 있어 주연이다. 뇌에도 별이 있다. 하지만 이 별은 뇌과학자들에게 대접받지 못했다. 뇌과학자들의 초점은 온통 신경세포였다. 이 별은 단지 주역인 신경세포를 돕는 조연일 뿐이었다. 바로 교세포의 한 종류인 '별세포(성상교세포)'다.
 
몇백년의 역사를 지닌 신경세포와 달리 별세포는 1990년대가 돼서야 두각을 보였다. 당시만 해도 뇌활성의 핵심인 신경 전달 물질이 신경세포만의 전유물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 등 뇌질환 관련 연구가 모두 신경세포에만 집중돼왔던 이유다.
 
최근 들어 별세포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고 있다. 별세포가 단순 보조를 넘어 신경세포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창준 단장이 이끄는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은 이 분야에 있어서도 선두에 자리하고 있다. 올해 35살인 원우진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박사는 교과서에 이름을 남길 '별세포 박사'를 꿈꾸고 있다.

 

◆ 치매·류마티스·우울증···답은 별세포?

 

실험쥐의 뇌 속 해마의 별세포를 면역조직화학염색(IHC, immunohistochemistry)으로 관찰한 결과. (왼쪽) GFAP(Glial fibrillary acidic protein)라고 불리며 별세포에만 존재하는 단백질이다. 이를 통해 별세포만 염색 가능하다. (가운데) 억제성 신경 전달 물질인 가바 (GABA)를 염색한 결과. (오른쪽) 별세포와 가바를 겹쳐놓은 사진. 이를 통해 별세포 안에 억제성 신경 전달 물질인 가바가 존재하는 걸 알 수 있다. [사진=원우진 박사 제공]
 
별세포는 뇌 안에서 가장 수가 많은 교세포다. 그 형태가 별과 같다고 해 '별세포'란 이름이 붙었다. 서로 간 연결돼 있는 신경세포 옆에 자리한다.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은 별세포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다. 국내 1호 뇌과학자인 신희섭 전 단장이 이끌던 그 연구단이다.
 
연구단의 가장 큰 발자취 중 하나는 치매와 별세포 간 관계 규명이다. 별세포에서 과하게 만들어지는 과산화수소가 곧 치매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존 치매는 신경세포에 문제가 생기며 쌓이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로 발생된다고 알려져왔다. 세계 최초의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아두카누맙'의 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두카누맙의 효능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실정이다.
 
연구단은 치매 원인을 신경세포가 아닌 별세포에서 찾으며 기존 패러다임을 뒤엎었다. 발상의 전환이다. 더 나아가 최근엔 별세포가 억제성 신경 전달 물질인 '가바' 생성을 유도한다고 밝혔다. 이 가바 분비가 결국 기억력 감퇴로 이어지고, 이는 곧 치매를 넘어 '인지장애 자체'를 발생시킨다는 주장이다.
 
인지장애는 류마티스 관절염의 증상 중 하나다. 연구단이 별세포를 통한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도 나선 이유다.
 
관절엔 활막세포가 있는데, 여기엔 B형 모노아민 산화효소(마오, MAO)인 '마오비'가 있다. 마오비는 염증을 만드는 단백질로, 인지장애의 핵심이다.
 
마오비가 인지장애를 일으키는 과정은 이렇다. ①염증세포가 스트레스 등으로 자극받으면 ②마오비가 분비된다. 이로 인해 ③과산화수소 같은 염증이 나오고 ④이 염증은 뇌에서 별세포와 만나 신경 전달 물질인 가바를 생성, 곧 ⑤인지 장애를 유도한다.
 
연구단은 현재 별세포로 인지장애와 관절염 모두를 잡는 치료제 발굴에 한창이다. 원 박사는 "치매의 경우 이미 약물을 발견, 국내 기업에 기술이전했다"며 "작년 말 전임상 1단계에 들어간 상태다. 치매 치료에서 나아가 파킨슨병에서의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 단장 따라 연구원行
 
원우진 박사는 "공적 이익을 창출해내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희망했다. [사진=이유진 기자]
 
원 박사는 연구단에서도 주목받는 신진연구자다. 고려대 생명공학을 전공할 당시 고려대와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가 융합대학원을 개설한다는 소식에 원 박사는 KIST 연구직으로 갔다. 여기서 이창준 단장을 처음 만났다. 이후 2019년도 이 단장을 따라 대전 IBS 본원으로 이직했다.
 
그가 연고도 없는 대전행을 선택한 데에 있어선 이 단장의 역할이 컸다. 원 박사는 "이 단장님의 연구실력이 독보적이니 단장님을 보고 내려오게 됐다"며 "당시 함께 연구했던 학생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내려왔다. IBS가 국내에선 경쟁력 있게 연구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됐고, 이 단장님과 신희섭 단장님도 계셨기에 주저하지 않았다"고 되돌아봤다.
 
이후 원 박사는 이 단장과 함께 별세포 관련 성과를 연이어 내놨다. 처음부터 별세포에 주력했던 건 아니다. 생명공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여타 연구자들과 다를 바 없이 신경세포만 집중했었다. 별세포에 대해선 무지했다. 그가 별세포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건 이 단장을 만나고 나서다.
 
원 박사는 현재까지 3건의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 류마티스 관련 약물 1건과 치매, 항노화 관련 2건이다. 이젠 정신질환까지 연구범위를 넓히고 있다. 외상후스트레스 증후군(PTSD)나 우울증에도 별세포의 역할이 있을 거란 이유에서다.
 
그는 "우리 연구단은 별세포가 신경세포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 분야 전체 탑이라고 할 순 없지만, 교세포와 치매의 기전 부분에선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부했다.
 
물론 이 과정이 결코 쉽진 않았다.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야 하는 연구 특성상 성공확률이 극도로 낮다. 정확한 가설을 세우는 것도 어렵지만, 세운다 하더라도 실제 연구는 차원이 다르다. 잘 될 거라는 기대와 안 됐다는 실망의 줄타리를 매일같이 타야 한다.
 
"삽질을 많이 했죠. 고생과 실망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조금씩 실마리가 보이더라고요. 만시간의 법칙이 이런 걸까요. 이젠 어느 정도 베이스가 쌓이면서 나름대로의 노하우도 생겼습니다. 모든 연구자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기초과학자는 엉덩이를 무겁게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 "미지영역 개척···사회 기여하고파"
 
"아인슈타인이 유독 일반인보다 별세포가 특정 영역에 많았다고 해요. 여기서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별세포가 지능과 관련 있지 않을까 하고요. 뇌질환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의사가 아닌 과학자로서 기여하고 싶어요."
 
원 박사는 사회에 기여하는 과학자가 꿈이다. 기업체로 갈 의향은 없느냐는 질문에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자나 연구자가 되고 싶다"고 단언했다.
 
그는 "개인의 호기심을 해결하는 연구도 좋지만, 사회적으로 기여하거나 공익을 추구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며 "아직 신경세포에 비해 별세포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20%밖에 되지 않는다. 이 분야에 이름을 남기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희망했다.
 
헬로디디(hellodd.com) 이유진 기자 lyj.5575@hellodd.com 입력 2023.03.08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