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논문 안 보면 안 되나요?] 1) 논문을 읽기 전에

산포로 2024. 8. 8. 08:45

  [논문 안 보면 안 되나요?] 1) 논문을 읽기 전에

 

안녕하세요, 저는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융합의과학부 조교수 김광은입니다.
앞으로 몇 편의 연재를 통해 의과학 연구 초년생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논문 읽기이고 3회에 걸쳐 작성할 예정입니다. 

 

논문을 왜 읽어야 할까요? 외우려고 읽는 것은 아닙니다. 

 

논문을 읽는 이유는 암기해서 시험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인류 지식의 한계를 파악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과학자가 수많은 논문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즉, 새로운 발견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읽은 교과서 안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지식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검증 과정에서 최초 발견과 대략 5년~10년 정도의 차이가 발생하며, 또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저자에 따라 일부 내용이 빠지기도 합니다. 반면 논문은 분야별로 세부 내용이 계속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찾아 읽어야 합니다.

 

논문이 담고 있는 지식 체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이론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 Bloom’s Taxonomy 

 

출처: Vanderbilt University Center for Teaching,
https://cft.vanderbilt.edu/guides-sub-pages/blooms-taxonomy/
 
첫 번째는 교육심리학자인 Benjamin Bloom의 6단계 교육 목표이며 Remember, Understand, Apply, Analyze, Evaluate, Create로 구분됩니다. 이중 앞의 3단계는 익숙한 부분입니다. 기본적인 사실을 외우고,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죠. 학부 과정의 전형적인 교육 방식이며 이것만 잘해도 사회에서 충분히 우수한 인재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대학원 진학은 그다음 단계인 분석, 평가, 창조로 넘어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4단계는 분석입니다. 분석은 아이디어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일입니다. 서로 다른 정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비교하면서 공통적인 부분과 차별적인 부분을 알아내는 단계입니다. 5단계는 평가입니다. 이 단계부터 본인의 주관이 포함됩니다.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무엇이 왜, 더 중요한지, 장단점은 무엇인지,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6단계는 창조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기존 아이디어를 조합하여 새로운 대안, 해결책, 이론 등을 제안합니다. 대학원에서 6단계는 논문이 학계에서 인정받아 출판되는 것을 기준으로 하며 그 인증서로 박사 학위를 수여합니다. 즉, 논문은 누군가의 창조적인 박사 주제이면서 여러분이 완성해야 할 글이기도 합니다.
 
2) Four stages of competence 
 
 
다음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유능감의 4단계입니다. 유명한 베이시스트인 Anthony Wellington이 악기 수업 중에 소개해서 Anthony’s 4 levels of awareness라고도 합니다. 관련 영상은 유튜브에도 있습니다. 악기를 배워 보신 적이 있으시면 이해가 편하실 겁니다. 
 
1단계는 무의식적 무능입니다. 말이 어려운데 쉽게 표현하자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즉 무언가를 처음 배우면 아무 지식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약간의 지식이 쌓이면 2단계인 의식적 무능에 진입합니다. 이때부터는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상태’입니다. 나에게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깨닫고 연습을 통해 채워가는 과정입니다. 학부생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이 단계를 넘어가면 3단계인 의식적 유능으로 올라갑니다. ‘무엇을 아는지 아는 상태’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범위를 파악할 수 있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서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사실 3단계까지만 되어도 우수한 학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단계는 무의식적 유능,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진정한 고수가 되면 지식이 체화되어서 스스로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데 따라 하기는 어려운 영역입니다. (밥 아저씨의 참 쉽죠?를 참조하세요). 지식의 최전선을 이끄는 대가들은 이미 4단계에 올라와 있어서 논문을 봐도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3) 지식-자신감 그래프
 
 
마지막 이론은 지식-자신감 그래프입니다. 사회심리학 분야의 더닝 크루거 이론에서도 ‘잘 모를수록 잘 안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위 그래프가 더닝 크루거 그래프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가지고 왔습니다). 입문자가 쉽게 빠지는 함정입니다. 조금만 배웠는데 모든 것을 깨닫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를 1단계 우매함의 봉우리라고 합니다. 논문 1,2편을 완벽하게 정독했을 때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지식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어리석어 보이고, 여기저기 지적하고 싶고, 아는 척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점점 더 읽다 보면 지식의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감이 하락하여 2단계인 절망의 계곡에 빠지게 됩니다. 심리적으로 가장 큰 무능력을 느끼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더 많이 배우게 되면 자신만의 해석 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자신감은 다시 상승하고, 스스로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3단계 지속가능성의 고원에 진입합니다. 
 
이 효과에 대해서 정확히 똑같지는 않아도 여러 사람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경규 씨가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고, 강호동 씨도 ‘한 권 읽는 사람의 철학이 제일 무서운 것’이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이 세상의 문제는 바보들과 광신도들은 자기 확신이 지나친 데 비해 현명한 사람들은 의심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논문을 읽기 전에 이런 이론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러한 심적 변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논문을 읽다 보면 모든 것을 알게 된 것 같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의 아이디어가 천재적으로 느껴졌다가 또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과학자는 이런 양극단을 오가면서 성장합니다. 잘하고 있습니다. 정상입니다. 

 

또, 한 가지 덧붙일 말은 영어 독해를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이 너무 좋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제대로 된 번역기가 없었는데 지금은 ChatGPT 등 AI 모델이 번역을 너무 잘합니다. 영문 PDF 넣어주면 한글로 요약해 주는 AI 툴도 있습니다. 영어 공부 물론 중요하지만 일단 읽기부터 시작하세요. 이제 더 이상 언어의 차이는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번역기의 사용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논문을 안 읽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일단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연재에는 논문을 고르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BRIC(ibric.org) Bio통신원(김광은) 등록202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