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랜디 셰크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11일 "유전자 가위를 몸에 넣어 난치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곧 열릴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셰크먼 교수는 이날 오전 서울대 자연과학대 국제회의실에서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초청으로 열린 강연에서 “세포 내 물질을 운반하는 ‘엑소좀’이란 세포소기관을 이용해 유전자 가위를 고장난 몸속 세포에 안정적으로 집어 넣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며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질병 치료 전망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셰크먼 교수는 세포 내 물질이 각 표적을 찾아 이동하고, 세포 밖으로 분비될 때의 운송 기전을 규명한 현대 세포생물학 창시자 중 한 명이다. 1970년대부터 효모를 이용해 이를 연구했으며, 운송을 통제하는 핵심 유전자 3종을 알아내고 이들 유전자의 돌연변이·질병 연관성을 밝혔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셰크먼 교수는 2013년 제임스 로스먼 미국 예일대 교수, 토마스 쥐트호프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셰크먼 교수는 이날 ‘세포 단백질과 RNA 분비 기전’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셰크먼 교수는 연구 계기에 대해 “1974년에 한 노벨상 수상자의 강의를 통해 인슐린과 같은 세포 내 물질이 소포체와 골지체를 거쳐 소낭에 포장돼 배출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하지만 이를 수행하는 분자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셰크먼 교수는 당시 인간과 세포 분열방식이 매우 유사하다고 알려진 효모를 이용해 세포 내 물질의 이동에 관련된 분자들과 그 유전자를 찾기 시작했다. 셰크먼 교수는 “1978년에 얻은 돌연변이 효모를 통해 관련된 유전자를 처음 알아낸 것은 정말 감동적인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 연구 이후 200개 이상의 돌연변이 효모를 이용해 세포 내 물질의 분비에 필요한 수십 개의 유전자를 찾아냈다.
셰크먼 교수는 1979년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세포 내 단백질 분비에 관여하는 sec1과 sec2라 불리는 두 개의 소포체 관련 유전자를 규명한 연구를 공개했다. 이듬해인 1980년에는 국제학술지 ‘셀’에 또 다른 sec유전자 23개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셰크먼 교수는 최근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의 ‘엑소좀’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엑소좀은 세포 내 물질이 밖으로 분비될 때 물질을 담아 옮기는 여러 세포소기관 중 하나다. 이 같은 세포소기관을 세포밖 소포체라 부른다. 셰크먼 교수는 “엑소좀과 같은 세포밖 소포체는 세포내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하는 것 말고도 세포 내 물질을 다른 표적 세포로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세포밖 소포체에 이상이 생겨 세포 내 물질이 정상적으로 표적세포에 이동하지 못하면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엑소좀에 대한 연구는 질병과 진단과 치료에 직접 응용될 수 있다.
셰크먼 교수는 엑소좀과 또 다른 세포밖 소포체인 미세소포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또 최근에는 엑소좀의 정확한 기능을 알아내고 이를 질병 치료에 활용할 방안을 찾고 있다. 특히 엑소좀을 이용해 '캐스9'라는 효소를 몸속에 전달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캐스9은 대표적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 캐스9 시스템의 일부로, DNA를 절단하는 역할을 한다. 캐스9을 체내에 안정적으로 전달하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체 수술로 난치병을 치료할 가능성도 있다. 셰크먼 교수는 “현재도 캐스9을 몸 속에 삽입하는 몇몇 방법이 있긴 하지만 특정 세포를 표적으로 삼기 어렵고, 체내 면역 체계를 회피하는 것도 쉽지않다”며 “혈액 내 수십억개가 존재하는 엑소좀을 이용하면 면역 체계를 회피할 수 있고, 표적 세포를 설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셰크먼 교수는 “몇 차례 엑소좀을 이용해 캐스9을 표적세포에 전달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며 “표적세포에 엑소좀과의 융합을 도울만한 물질이 없는지 확인하는 실험을 내년에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셰크먼 교수는 이날 강연을 마치고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을 방문해 김빛내리 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을 비롯한 연구원들과 함께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앞서 이달 10일에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기초과학연구원 관계자는 “취임식에는 참석했으나 당일 개별적인 면담은 없었고 차후 일정에도 없다”고 전했다. 셰크먼 교수는 12일 출국 예정이다.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com) 서동준 기자 bios@donga.com 2022.05.11 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