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추천 도서] 모든 생명공학도에게 추천하는 책_올리버 몰턴의 태양을 먹다
사람들은 과학이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복잡해 보이는 이론과 수식들이 먼저 생각나고 사용하는 용어들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죠. 맞는 말입니다. 배경지식이 전혀 없으면 아무리 좋은 내용도 유익이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기술 교육은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공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등교육이 끝나고 성인이 된 후부터는 과학기술에 대한 교육을 받질 않습니다. 이미 기술의 발전은 학교 교육만으로 따라잡기가 불가능해진 현실에서 학교의 역할만 강조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과학기술에 대해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 중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에서 특별히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강연을 듣거나 영상을 시청하는 행위에 비해 매우 능동적인 노력이 필요한 행위입니다. 게다가 과학기술을 주제로 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미 기본적으로 난이도가 꽤 높은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임에도 과학기술 영역의 책을 읽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강조하고 싶습니다. 독자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책을 쓰는 작가들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자들 중에서 전문 작가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같은 분야 연구자들끼리의 소통을 넘어 대중과 소통하는 연구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 기술을 잘 아는 연구자들과 대중들의 소통이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관찰하고 그 원리를 찾아내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제 방식대로 표현해 보면, 과학을 배우는 목적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이 세상은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철학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과학기술의 목적을 이뤄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유명한 철학자라고 알려진 위인들이 위대한 과학자이기도 한 이유일 겁니다. 그리고 과학기술분야에서 받는 학위는 Ph.D.(Doctor of Philosophy)라고 하는데, 이것만 봐도 과학기술 영역의 관심이 그저 효율성과 부의 창출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하게 된 첫 연구주제는 광합성 미생물을 이용한 미생물연료전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석사과정에서 저의 전공은 생물공학이었는데, 제 연구주제인 미생물연료전지는 다양한 분야가 융합된 복합기술이었습니다. 미생물연료전지의 개발로 개선하고자 하는 중요한 이슈들도 여러 가지였습니다.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후문제, 수질오염 문제, 친환경 에너지 문제 등이 연관되어 있었는데, 중요한 연구수행 목표 중 하나가 광합성 미생물의 광합성 효율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여름철 발생하는 심각한 녹조현상으로 인해 강과 호수의 녹조현상을 제어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수행되던 때에 다른 한편에서는 호수에서 녹조류를 대량으로 배양하여 바이오연료를 얻기 위한 연구 또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광합성을 통한 증식을 억제하고자 하는 쪽과 강화하고자 하는 연구가 같은 시대에 진행되었던 것이죠.
광합성에 대한 지식은 그리 오래된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광합성 생명체들의 혜택을 입은 기간에 비하면 인간이 광합성에 대해 이해하게 된 시간의 길이는 매우 짧습니다. 현재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를 살펴보면 광합성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학교에서 편하게 배우는 광합성에 대한 모든 내용들이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세상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던 내용이라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대학입시를 위해 모든 고등학생들이 푸는 문제집에 나오는 광합성과 관련된 실험 내용들은 문자 그대로 과거 위대한 과학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밝혀낸 결과물들입니다. 겉으로 볼 때, 매년 봄마다 식물이 햇빛과 물, 공기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광합성이라는 자연적인 과정은 실제로 매우 복잡한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생명을 연구하는 모든 연구자들과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모든 학생들이 생명의 고리를 잇는 핵심과정인 광합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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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광합성 과정 요약
Daniel Mayer from Wikipedia, 올리버 몰턴은 그의 책에서 이산화탄소가 당이 되는 과정인 '캘빈회로'라는 기존의 명칭 대신 앤드류 벤슨의 공로를 인정하는 의미로 정정된 '캘빈-벤슨 회로'라는 새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원출처)
앞에서 이야기한 과학 커뮤니케이터와 관련해서,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은 대중과 소통할 때 어떤 기술의 원리와 이론적 내용들을 전하기 위한 목적만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주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대중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그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필요합니다. 만일 이론적인 내용과 특정 적용사례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시중에 나와 있는 전공서적들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은 하나의 주제 안에서 연결되는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들로 대중과 소통하는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올리버 몰턴의 책 [태양을 먹다]는 광합성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 책이라는 점에서 모든 생명공학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작가는 과학철학과 과학사를 전공하였는데, 광합성 연구에 기여했지만 기여도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많은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합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난 학문 분야들과 광합성을 연구하던 연구자들이 전쟁의 시기에 핵무기 개발과정에 참여하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등 독자의 흥미를 끌만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위대한 연구자들의 실험 내용이 지금은 고등학교 참고서에 하나의 문제 예시로 등장하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우리가 평범하게 접하는 그런 지식들이 과거에는 노벨상을 수여받을 정도의 위대한 발견이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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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태양을 먹다 한국어판과 원서
태양을 떠올릴 수 있는 주황색을 강조한 번역판과 달리 원서는 화창한 날씨에 식물이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image from kyobobook.co.kr & goodreads.com (이미지 출처 한국어판, 원서)
광합성은 지구라는 행성을 지금까지 관찰가능한 우주에서 생명이 존재하는 유일한 행성이 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생명에 대한 독특한 표현이 있습니다.
‘생명은 얼핏 보기에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법칙에 예외로 보이게 한다(81p)’
‘살아있다는 것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세포 내부에서 지속적이고 방향성이 있는 전자의 움직임이다(98p)’
생명의 특징은 무질서도를 줄여서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지구가 닫힌 계(system)가 아니라 열린 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구가 열린 계가 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특별한 과정이 광합성입니다.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 덕분에 다른 행성에는 없는 생물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광합성을 가능하게 하는 엽록체라는 생물학적 기계장치가 매우 작은 입자인 광자(photon)를 포획하는 과정을 시작으로 분자 수준에서 이어지는 전자의 흐름에 따른 에너지 생산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펼쳐지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책에서는 광합성이라는 주제를 생명의 경이로움을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저자는 그동안의 지구가 어떻게 기후와 환경을 변화시켜 왔는지 살펴보며 근래의 인간의 삶이 과거의 기후 변화와는 어떤 다른 양상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짚어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생명의 특징인 광합성을 깊이 이해하는 일이 우리가 현명한 미래를 선택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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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녹색 잎, Kumiko SHIMIZU from Unsplash.com
광합성 미생물을 이용한 탄소중립의 실현은 여전히 저의 핵심 연구주제이기도 합니다. 엽록소에서 일어나는 광합성은 태양광 전지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생산과 비교했을 때 훨씬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일어납니다. 효율면에서도 태양광전지가 좀 더 높다고 할 수 있지만, 광합성 생명체가 전지구적으로 주는 유익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광합성은 앞서 이야기한 생물권을 가진 유일한 행성인 지구를 지탱하는 핵심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올리버 몰턴의 이 책이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작가가 대중에게 주는 좋은 선물의 한 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통한 광대한 서사가 있으며, 현실에 맞닥뜨린 중요한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고, 어쩌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제가 추천하게 될 책들에 대한 몇 가지 기준들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어느 책이나 번역상의 아쉬움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부분은 개인적인 판단에 맡기며, 제가 추천하고 싶은 책들은 하나의 주제를 통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고, 주장하는 바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남겨 둔 책이어야 합니다. 책이 좀 두꺼워지더라도 본문에 인용 표시가 잘 되어 있으며, 주석과 참고문헌 표기가 잘 되어 있는 책들이 될 것입니다. 독자의 지적인 만족도를 충족시켜 주면서도 책 자체로서의 완성도 또한 높은 책을 추천할 것입니다. 책을 추천하는 목적은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연구한 결과를 대중들과 공유하며 소통할 수 있도록 그에 관한 좋은 사례를 제시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일이 많아질수록 일반 대중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 및 관심이 높아져 우리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BRIC(ibric.org) Bio통신원(서규원) 등록일2024.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