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 날갯짓 시작된 ‘AI 신약 개발’···우린 걸음마도 못 뗐다
전 세계 시장 연평균 45.7% 성장세···2027년 40억 달러 전망
구글·엔비디아, 글로벌 빅파마 오픈이노베이션 통해 영역 확대
국내는 ‘인력’조차 부족···기업 절반 이상 “자체 담당자 미확보”
‘데이터 3법’에 활용성 ‘걸림돌’···“글로벌 격차 더 벌어질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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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AI 신약 개발’이 획기적인 속도로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지만 국내는 우려에 휩싸여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해외 IT 대기업들과 협업하며 시장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관련 인력조차 갖추지 못한 가운데 규제에 가로막혀 디지털 전환의 시대 흐름에 한참 뒤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AI 신약 개발’은 올해 전 세계 제약바이오 기업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주요 키워드다. 이 같은 관심은 지표로도 드러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발간한 ‘AI 뉴노멀 시대의 도래와 신약 개발’ 리포트를 보면 글로벌 AI 신약 개발 시장은 2022년 6억980만 달러에서 연평균 45.7% 성장해 2027년 40억35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신약 개발에 관심이 쏠린 배경에는 ‘속도’가 있다. 일반적으로 신약 개발 초기단계는 4~7년이 소요된다. 그러나 AI를 활용했을 때는 신약 후보물질 발굴 기간을 1년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신약 개발 분야는 개발 비용의 증가, 긴 개발 기간, 낮은 성공률 등을 포함한 생산성 저하 문제를 계속 겪고 있었기 때문에 AI의 활용에 더 이목이 쏠리게 됐다.
이미 해외에서는 글로벌 빅파마와 IT 대기업들이 손잡고 시장 내 존재감을 과시하는 분위기다. 구글·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들은 AI 신약 개발 플랫폼을 통해 빅파마와의 협업·오픈이노베이션 전략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공룡’으로 불리는 엔비디아는 신약 개발에 생성형 AI를 도입한 모델 ‘바이오네모(BioNeMo)로 시장 주도에 나섰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관련 인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 신약개발지원센터의 제약바이오 기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62명 중 38명이 기업 내 자체 AI 인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자체 인력을 보유한 기업 중에서도 1명을 보유했다고 답한 기업이 37.5%, 2명이 12.5%, 3명이 12.5%, 4명 이상이 37.5%에 그쳤다.
이는 글로벌 선진국들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분석 결과 AI 신약 개발 기업은 2000년대 후반부터 설립이 증가해 왔으며, 2018년 가장 많은 기업들이 설립된 것으로 나타난다. 관련 투자도 크게 증가해 2023년까지 총 603억 달러가 투입됐으며, 자체 AI 역량 강화를 위해 자체 조직 설립, 인력 고용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구글·오픈AI 등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AI 개발자 등 AI 전문인력만 수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과 오픈AI에서는 매년 AI 인력만 100명씩 뽑고 AI 관련 인력을 합치면 수천명이 될 것”이라면서 “신약 개발에도 이런 전문인력이 필요한데 우리나라 제약사 내 AI 전문인력을 전부 합쳐도 수십명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도적 환경도 걸림돌로 꼽힌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과 AI 신약 개발 기업, 국외 생명과학 분야 디지털 및 분석 리더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인력 부족과 함께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데이터 부족’이다. 이것이 AI 신약 개발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낮다고 평가받는 이유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데이터 3법’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의 개정으로 가명처리정보의 활용범위가 확대돼 실제 환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질병 패턴 분석, 임상시험 설계 등 신약 개발의 다양한 부분에서 활용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가명처리정보의 재식별화 위험, 데이터에 대한 책임 소재 강화 등의 한계로 여전히 활용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앞서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에서는 데이터심의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서의 제약을 완화했으며, 데이터 유형별 가명처리방법에 일부 데이터의 경우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도록 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가명처리 가능 여부를 유보한 데이터들이 존재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데이터가 상존, 이것이 AI 신약 개발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러자 업계에서는 인력과 규제에 가로막혀 세계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제약사들이 AI 인력풀을 갖추기가 쉽지 않은데 의료 정보 활용도 장벽이 높아 국내에서 AI 신약 개발을 영위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엔비디아 등 글로벌 대기업의 행보를 보면 앞으로 격차는 계속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해외 경우처럼 플랫폼 기업들과 손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금 구글과 엔비디아가 글로벌 빅파마들과 손잡고 AI 신약 개발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만큼 국내 제약사들도 비슷한 방식을 취해볼 만하다”면서 “우리나라 제약 업계의 AI 인력 상황을 고려한다면 자체 인력을 갖추는 것보다 이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뉴스투데이(enewstoday.co.kr) 이승준 기자 tmdwns2159@enewstoday.co.kr 입력 2024.04.18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