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식물의 종자 생산이 위험하다
인간보다 더 오랜 진화역사를 가진 곤충과 식물은 공진화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왔다. 어느 날 둘 중 하나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최근 암술과 수술의 수정에 도움을 주는 수분 매개충이 없다면 지구의 개화 식물 중 3분의 1은 종자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남아공 스텔렌보스 대학교 연구진은 ‘식물 종자생산이 수분 매개자 감소에 미치는 광범위한 취약성’이라는 논문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했다.
개화 식물 절반이 최소 80% 수량의 씨앗을 만들려면 수분 매개자가 필요하다는 것. 특히, 수분 매개자로만 수분이 가능한 식물종은 33%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식물 10종 중 3종은 곤충과 동물 등의 수분 매개자에게 번식을 의존하는 셈이다.
식물 번식에서 수분 매개자의 ‘기여도’
세계 약 35만여 종의 개화식물 대부분은 번식을 위해 벌, 나비 등 수분 매개자와 관계를 맺는다. 매개하는 동물의 82%가 곤충, 6%는 새, 박쥐와 같은 척추동물이다. 수분 매개자가 개화식물의 종자 번식에 얼마나 도움을 줄까.
연구진은 과거 과학자들이 수행한 실험자료를 수집했다.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40년(1975~2015) 동안 11,392개 식물 개체군과 1,174종을 대상으로 한 1,528개 실험 자료다.
연구진은 자료를 바탕으로 ‘수분 매개자 기여도(PC, Pollinator Contribution)’를 지표로 삼아 개화 식물을 비교 분석했다.
조사해보니 한해살이나 두해살이 초본류의 PC는 나무나 관목 등 여러해살이식물보다 낮았다. 나무, 관목, 여러해살이 초본류, 한해살이 초본류 등의 순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화식물의 48%를 차지하는 일반적인 교관목 등의 나무나 구근류, 2%의 소수를 차지하는 번식 횟수 적은 디기탈리스와 같은 종은 수분 매개자의 의존도가 높게 나타났다.
반면에, 1년이나 2년의 짧은 수명을 가진 식물은 곤충이 수분하는 것보다 자가 수정률이 높아 PC값이 낮았다. 또한, 외래에서 침입해 귀화한 식물은 토착종보다 PC가 낮았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 침입종으로 국내에서는 돼지풀, 서양등골나무, 가시박, 양미역취 등이다. 인간이 잡초라고 규정짓는 식물도 마찬가지다. 번식력이 강한 이유가 설명되는 셈이다.
수분 매개자 부재 시…현화식물 30% 이상 멸종 가능성
전체 속씨식물 번식에서 수분 매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니 ‘수분의 취약성’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수분 매개자가 없어지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연구진은 수분 매개자가 없으면 개화식물 종의 3분의 1은 씨앗을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개화식물의 절반은 번식력이 80% 이상 감소한다는 것이다. 물론 식물마다 최소한의 자가수정을 하지만 수분 매개자 부재 때문인 손실을 보상받지는 못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근친 교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유전적 변이를 줄어들게 한다. 변이가 줄어들면 식물 다양성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PC가 낮은 잡초와 같은 식물이 지표를 덮는 면적을 확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위도에 따른 PC의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수분 매개자 감소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가 적도에 가까울수록 심각한 상황이다. 멸종 위기에 따른 기존의 기울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연구진은 전망했다.
논문의 주저자이면서 스텔렌보스대 수리과학부 제임스 로저 박사후연구원은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많은 수의 수분 매개자가 멸종됐고, 야생식물이 수분 매개자에 의존한다는 우리의 발견은 자연생태계 큰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난 1월에 미국 워싱턴 국립자연사박물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꿀벌 종수가 1990년대 이전보다 2006~2015년 사이에 약 25% 감소했다. 감소 원인에 대해 살충제 사용과 기후변화를 꼽고 있다.
공동저자인 콘스탄츠 대학의 마크 반 클루네 교수는 “모든 수분 매개자가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은 없지만, 여러 요인 탓으로 수분 매개자 감소는 연쇄적인 피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식물은 먹이 사슬의 기초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식물이 수분 매개자 감소 영향으로 타격을 받아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게 추가적인 연쇄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번 연구를 위해 전 세계 5개 대륙의 23개 기관에서 과학자 21명이 참여했다. 로저 연구원은 “수분 매개자 중요성을 추정치로 제공한 첫 연구”라고 말했다.
정승환 객원기자 ㅣ 2021.10.27 ⓒ ScienceTimes
생명과학 사이언스타임즈 (2021-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