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 밑 희귀 광물 찾아… 대한민국 ‘해양 경제 영토’ 늘린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50주년
지난 2020년 12월 제주항 북서쪽 해상에서 저인망 어선이 전복됐다. 거센 풍랑을 만난 어선은 선체가 뒤집혔고, 타고 있던 7명은 모두 실종됐다. 보름 넘는 수색을 통해 6명의 시신을 찾았다. 높은 파고와 빠른 조류의 영향에도 대부분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던 데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개발한 해양 예측 시스템 ‘KOOS’의 도움이 컸다. 위성 등 첨단 장비로 사고 당시 강하게 불던 북풍과 동서로 왕복하는 해류의 움직임을 분석해 실종자 수색 범위를 좁힐 수 있었던 것이다.
1970년대 한국은 해양 과학의 불모지였다. 일찌감치 해양 탐사의 중요성에 눈을 뜬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잠수정과 수중 로봇 등 첨단 장비를 동원해 본격적인 심해 탐사에 나서고 있었지만, 한국은 해양 탐사를 위한 연구선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1973년 KIOST의 전신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설 해양개발연구소가 만들어지면서 해양 탐사의 기초를 닦았고, 이제는 세계 최초의 정지궤도 해양관측위성과 해양과학조사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조위관측소 등 첨단 인프라와 탐사 역량을 갖추게 됐다. 한국 해양 탐사와 연구의 역사는 곧 KIOST의 역사인 셈이다.

◇국제 해양 연구 이끄는 KIOST
한국 해양 연구 성과는 1992년 온누리호가 취항하고 연구 거점이 확보되면서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2002년 남태평양 심해열수구 지역에서 연구를 이어가던 온누리호는 80도에 달하는 고온에서 서식하는 고세균을 발견했다. ‘서모코커스 온누리누스’라 이름 붙인 고세균은 일산화탄소, 개미산 등을 먹고 수소를 생성하면서 동시에 생체에너지를 만들어 증식할 수 있었다. KIOST는 환경오염 물질을 먹고 에너지로 활용 가능한 수소를 생산하는 신종 고세균의 대사 작용을 세계 최초로 밝혀 2010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했다. 이후 고세균을 활용한 바이오수소 생산 기술을 개발해 장기 생산 실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KIOST는 해양 오염의 주범으로 꼽히는 미세플라스틱 연구도 이어오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미세플라스틱은 생태계 먹이 사슬을 따라 생물 몸속에 쌓이면서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KIOST는 2010년부터 플라스틱이 자연 풍화를 통해 단기간 안에 미세화돼 엄청난 양의 초미세플라스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정량적으로 규명하고, 플라스틱에 첨가돼 있는 화학물질이 환경과 생물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입증했다.
◇광물 탐사로 해양 경제 영토 확장
KIOST는 심해저 광물 자원 탐사를 통해 해양 경제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다. 심해에는 니켈, 망간, 코발트 등 희귀 광물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어 채굴지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퇴적물 속 금속 성분이 침전되며 형성된 감자 크기의 망간단괴는 바다의 ‘검은 황금’으로 불릴 정도로 가치가 높다. KIOST는 1994년부터 온누리호로 180만㎢에 이르는 광활한 해역을 탐사해 하와이 남동쪽 15만㎢에 달하는 심해저광구 망간단괴 개발을 위한 배타적 탐사권을 확보한 뒤, 정밀 탐사를 통해 7만5000㎢ 규모의 광구를 확정했다. 미리 탐사 광구를 확보해둔 덕분에 심해 채굴이 시작되면 곧바로 자원 개발에 뛰어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해양 연구가 새로운 물질의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독도 전문 연구기관으로 지정된 KIOST는 2020년 독도 주변 해역 퇴적토에 서식하는 해양미생물에서 세 종류의 신물질을 발견했다. ‘독도리피드 A-C’라 명명한 신물질은 항암 효과를 가지고 있었으며, 연구 성과는 해양 의약 분야 국제 학술지 ‘마린 드럭스’에 게재됐다. 이 밖에도 독도새우에서 분리한 유산균이 항암 활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밝혀 특허를 출원하고, 해양 미세 조류인 ‘스피루리나’에서 기억력 개선 물질을 추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개별 인정형 원료를 인증받는 등 해양 물질의 경제적 활용에도 성과를 내고 있다.
조선일보(chosun.com) 테크부 과학 및 제약바이오 분야 담당 황규락 기자 입력 2023.11.3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