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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사의 책장] 좌절과 용기의 노벨상 이야기

산포로 2024. 1. 25. 09:36

[김박사의 책장] 좌절과 용기의 노벨상 이야기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

 

연구의 성과가 오르거나 그렇지 않은 것은 운이라고 생각하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기로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 삶이지. 나중에 현격한 차가 생기더라도 그런 일에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네.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운도 찾아와 좋은 일도 생기겠지. 나는 언제나 그런 마음으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며 생활하고 있다네. 부디 여유를 찾고 건강에 유의하면서 운이 찾아오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네.
-니시나 요시오-

 

나는 위에 있는 한 단락의 내용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위 편지는 일본의 여러 노벨상 수상자들을 길러내 일본 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린 니시나 요시오가 그의 제자인 도모나가 신이치로에게 쓴 편지의 일부이다. 

 

편지를 받은 시점에서 도모나가는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는 학창 시절에 뛰어난 학생이었지만 연구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자신의 동료인 유카와가 승승장구하고 결국 노벨상까지 수상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며 큰 좌절감만 느꼈다.

 

하지만 자택과 연구실이 전쟁으로 불타버렸음에도 그는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기나긴 시간 끝에 도모나가는 1965년 양자역학분야의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다.

 

그와 나를 비교하는 게  맞을지 모르지만 위 편지는 나 역시 통과하고 있었던 어두운 터널에서 큰 위로를 주었다. 

 

한 동안 나는 저 편지의 내용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저장했었다.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는 지금 보면 다소 유치한 제목을 가졌지만 근대화 시절의 일본 과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자세히 알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때, 일본인은 어떻게 노벨상을 거머쥐었나라는 관점으로 보는 것보다, 위대한 발견을 했던 선배 과학자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좌절을 이겨내며 용기를 가졌는지를 생각해보며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들 역시 노벨상을 받기 이전에 선배 과학자였고 때로는 전쟁에 앞장서서 생체 실험을 했던 악당이기도 했으며, 후대에는 높이 평가받았던 일을 당시에는 하나도 인정받지 못한 채 비웃음만 받았던 좌절을 경험했던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또 하나의 관점은

 

새로운 발견의 필수 요소는 비난과 반박이다.

 

과학자라면 누구나 경험하고 싶은 위대한 발견 뒤에는 몇 가지 조건이 따르는 것 같다.

 

첫째, 위대한 발견은 기존의 통념을 거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많은 의심과 반대 심지어 비난까지 받을 수 있다.

 

둘째, 하지만 확실한 데이터에 기반한 내용은 결국에는 세상이 받아들인다.

 

셋째, 그 확실한 증거를 세상에 계속 내밀 수 있는 용기와 인내 그리고 끊임없이 주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위 세 가지를 갖춘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1. 군의관이었던 에바시 세쓰로는 근육의 수축에 칼슘이 중요하다고 밝힌 과학자이다. 신경 전달 물질로 잘 알려진 나트륨이 주를 이루던 연구에서 근육의 신경 전달 물질로 칼슘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내 칼슘의 시대를 열었다. 

 

그의 발견은 후대 과학자가 정자의 편모 운동의 메커니즘을 밝히는데도 사용되었고 칼슘에 의해 작용되는 PKC의 작용 메커니즘과 기능을 밝히는 것으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가 학회에서 칼슘의 역할에 국제 학회에서 발표했을 때 모두들 비난했고 비웃었다. 심지어 좌장이었던 한스 베버 교수는 “칼슘 설은 명백히 부정되었습니다”라는 말로 사망 선고를 내렸다. 현재 학회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허황되어 보이는 발표는 원색적인 비난을 숨기지 않았던 시대였던 것 같다.

 

2. 가토 겐이치는 근육 신경이 마비될 때 근육이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가 전기가 감쇠했기 때문이라는 기존의 이론을 반박한 “불감쇄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고국에서 수많은 반대와 비난에 처한다. 일본 생리학회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결국 학회에서 돌아오는 기차에서 눈물을 떨궈야만 했다. 하지만 그 후 국제학회에서 직접 시연한 실험을 통해 자신의 가설을 세계적으로 입증하게 된다.

 

산업계가 이끈 기초 과학

 

다이치 산쿄와 이화학 연구소

 

일본의 이화학 연구소(RIKEN)는 세계적인 기초 및 응용 연구소이다. 1917년에 세워진 연구소는 그때 당시 과학계를 이끌던 독일의 빌헬름 연구회(현재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창립 년도인 1911년에 비교해 불과 6년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일본은 애초에 현대 과학이 우리보다 빨랐던 나라이다.

 

현재는 일본 문부성 소속이지만 설립은 민간이 주도하였는데 그 주인공은 “다카미네 조키치”였다. 그의 이력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근대 산업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카미네 조키치는 이 책의 초반부를 장식한다. 그는 미국 유학 중 인산 비료를 연구하여 일본 최초로 인조 비료 회사를 설립한다. 인조 비료 이전에는 새나 동물의 분뇨를 활용했는데 그 양이 적고 품질이 좋지 않아 작물의 수확량이 적었다. 인조 비료 공급이 현제 식량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후 그는 누룩곰팡이 속에서 강력한 소화 효소를 발견하고 다카디아스타제라는 소화제로 개발하게 된다. 다카미네는 이후 아드레날린을 전 세계 최초로 추출하여 판매하게 된다. 이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산쿄 상회를 설립하게 되는데 이후 2005년에 다이치 제약과 합병을 통해 다이치 산쿄가 된다. 

 

맞다, ADC인 엔허투의 개발로 ADC업계의 선두가 된 그 다이치 산쿄이다.  20세기 초반에 일본의 산업계를 미국 못지않게 앞장 시켜 나갔던 그는 일본의 기초 연구를 위해 일본 최초로 민간이 주도하는 연구소를 설립한다. 산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오히려 기초과학이 중요함을 역설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왜 우리는 못 받은 노벨상을 일본인은 받을 수 있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수십 년 전 일본인 과학자들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오히려 더 열약한 환경에서 하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되며 책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다.

 

위대한 발견과 성취에는 비상한 머리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보다 고난과 끈기 그리고 이것을 감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출간된 지 꽤 되었고 이미 절판된 책이지만 연구자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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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탐구생활(필명)) 등록일2024.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