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을 때 돌아보는 책] 인공지능을 키운다는 것,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테드 창 저>
예능 프로그램 <개는 훌륭하다>를 보다 보면 “개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므로 짐승처럼 대우해야 한다”는 유튜브 댓글을 한 번은 꼭 마주하게 됩니다.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를 읽으며, 인공지능도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므로 로봇처럼 대우해야 마땅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공지능을 단순한 로봇으로 여겼을 때 생겨나는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그것이 인공적일지언정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학소설과 영화가 여럿 있어 왔지만,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는 특별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인공지능은 일종의 반려 로봇으로 시작합니다. 귀여운 반려 동물과 함께 하고 싶지만 일일이 챙겨 주는 것에는 다소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배우고 발전할 수 있으니 손이 덜 가고, 더 나아가 즐거운 의사소통까지 가능한 “디지언트”가 탄생하게 됩니다. 디지언트는 가상 환경에서 일종의 게임 캐릭터 형태로 존재하는 “소프트웨어 객체”고, 주인공 애나는 디지언트를 만들고 판매하는 회사에서 그들을 교육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출시와 더불어 폭발적인 인기를 끈 디지언트는 이내 로봇 골격을 입고 현실에 걸어 다니는 존재로 구현되기까지 합니다. 애나는 모니터에서만 보며 교육시키던 디지언트와 현실에서 물리적으로 상호작용을 시작하자 그들에게 더 큰 애착을 가지게 되고, 특히 가장 똑똑했던 잭스에게 큰 애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디지언트의 인기는 얼마 안 가 차게 식게 되는데요. 성장할수록 너무 요구하는 게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말도 듣지 않고, 원치 않는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 귀찮은 질문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결국 회사는 경영난으로 인해 문을 닫게 되고, 직원들에게 남은 디지언트를 무료로 입양시켜 주지만 상당수의 직원들이 입양을 거부합니다. 그중에는 이제 “진짜” 아이를 임신했으니 더 이상 “가짜” 로봇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나는 과연 이들을 돌보는 것이, 어떤 것의 대체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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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문을 닫은 후 서버는 얼마 남지 않은 유저와 함께 방치됩니다. 동시에 “덜 번거로운” 다른 인공지능 상품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이들은 이미 너무나도 완벽해서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으며, 번거롭게 질문을 하지도, 애정을 갈구하지도 않아 편하고 생산성이 높은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구매와 동시에 특정 목적에 맞춰 사용될 수 있어 인기를 얻고, 이들이 있는 다른 회사의 서버는 계속 발전합니다. 디지언트들은 다른 인공지능 친구들과 상호작용하지 못한 채 좁고 낡은 서버에서 날이 갈수록 무기력해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애나를 포함한 남아 있는 유저들은 기존 회사의 서버를 떠나 다른 회사의 서버로 디지언트들을 옮기려고 하지만 비용 문제로 서버 이전은 쉽지가 않습니다. 이 와중에 디지언트를 각종 연구 목적으로, 혹은 유흥의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회사들이 서버 이전 비용을 지원해 주겠다며 접근해 오게 되는데 주인공은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타개하게 될까요?
이 책의 가장 특별한 점은 책의 모든 인물이 사랑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물이 고민하던, 혹은 결정했던 가장 충격적인 선택까지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디지언트가 더 이상 반려동물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되었을 때, 더 많이 배우기 시작했기에 번거로워졌고, 그래서 인기를 잃었을 때에도 변함없이 그들을 사랑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애나가 잭스를 공들여 키우며 들였던 그 십 수년의 시간, 잭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주고자 내렸던 그 모든 어려운 결정들, 그리고 잭스와 함께 하기로 결심한 앞으로의 더 긴 세월. 이 모든 것들은 사랑과 애정에 근거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키우듯 인공지능 역시 오랜 시간을 들여 사랑으로 키워내는 것이었고,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혼자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애나의 역할이었습니다.
결국 디지언트는 너무 번거로운 존재임이 판명 났기에 버려졌고, 곧 그 단점을 개선하여 똑똑하지만 말까지 잘 듣는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들어 냈음에도 개발자들은 왜 만족할 수 없었을까요? 똑똑해야 하지만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귀찮다고 하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재미가 없다고 하니 어디서 균형을 찾아야 하나요? 우리가 무엇을 얻고자 인공지능 연구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들겠다는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 달성되고 나면, 그렇게 탄생한 지적인 존재는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요?
저는 예전에 영화 <베놈 (2018)>을 보고 극장을 나오며, 영화를 같이 본 친구와 느낀 점이 달라 다소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몸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에 대해서 친구는 끔찍하다고 했지만, 저는 제게도 저런 영혼의 동반자가 있다면 삶이 정말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친구는 편할 때마다 불러내서 무언가를 같이 할 수 있는 존재를 원하는 거라면 이미 집안일을 해주는 로봇도 있으니 그런 인공지능 로봇이야 이제 곧 나오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주인공과 심비오트는 허구한 날 서로 싸우기만 하지 않냐며, 오히려 똑똑하지만 싸우지 않게 말 잘 듣는 로봇이 나오면 더 좋을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며 머리를 긁적이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허구한 날 안 싸우면 그게 무슨 재민겨~’ 했답니다. 서로의 예측할 수 없음을 주고받는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 결국 인간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고, 더 나아가 사랑할 존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 애나를 포함한 모든 인물들이 사랑으로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지능이란 단시간에 공장에서 뽑아내듯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키워지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창조주가 된 인간의 입장에서, 우리의 피조물이 호기심으로 가득 찬 어린아이 같은 존재라면 이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오랜 기간 지켜보며 성장을 기다려줄 수 있을지. 마지막 한 줄, 끝까지 읽어야만 진가를 느낄 수 있는 멋진 책이니 꼭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전에 단권으로 출판되었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현재 <<숨>>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숨>>에 있는 테드 창의 모든 단편들은 매우 재미있는데, 특히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그리고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 좋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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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미윤(필명)) 등록일202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