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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었을 때 돌아보는 책] 대학원에 온 이유, <단백질의 일생, 나가타 가즈히로 저>

산포로 2024. 3. 7. 11:22

[길을 잃었을 때 돌아보는 책] 대학원에 온 이유, <단백질의 일생, 나가타 가즈히로 저>

 

대학생 때는 하고 싶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대학원생이 되면 드디어 그 연구를 할 수 있으니 행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생인 지금 스스로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4년 차 중반이 지나며 문득 대학원 지원서를 살펴보니, 지금 저는 전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습니다. 저는 구조생물학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했음에도, 구조생물학이 좋았습니다. 어쩌면 하나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겁 없이 뛰어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생체 고분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 마음 하나만 가지고 대학원에 왔고, 단 하나도 쉽게 풀리는 실험이 없어 매일 벽에 부딪히지만 그때의 그 마음만큼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단백질의 구조를 풀고 싶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으니까요. 제가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단백질은 kinesin인데, 특히 kinesin이 microtubule 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을 가장 좋아합니다. 마치 화물 기차가 기찻길 위를 달리듯이, kinesin도 꼬리에 택배를 달고 microtubule 위를 걸어 다녀요. “세포 안에서 어떻게 다양한 물질들이 목적지로 운반될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kinesin이 움직이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준다면 가장 직관적인 답변이 될 것입니다 (영상 하단 참고문헌 참조).

 

표지 출처: yes24

 

나가타 가즈히로의 <단백질의 일생>은, “나는 구조생물학이 좋고, 그리고 단백질이 좋아! 그러니까 대학원에 가서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과거의 제가, 그래도 단백질이 대체 왜 중요한지는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최소한의 양심의 발로에서 찾아 읽게 된 책이었습니다. 말문이 막혔거든요. 제가 단백질 연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백질? 뭐 단백질 보충제 말하는 거야?” 그건… 아닌데… 그렇지만 사실상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단백질은 중요한 영양소로서 섭취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물론 근육을 키우는 데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생명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로서의 세포 안에서 바라본 단백질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이 책은 세포 속에서 단백질이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더 작은 수준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단백질의 일생>은 단백질의 탄생부터 성장/성숙, 노화를 거쳐 죽음, 그리고 그 이후에 이르기까지 단백질의 삶을 다룹니다.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 저는 당연히 성장/성숙 파트를 특히 몰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부분이 단백질이 어떻게 접혀서 특정한 구조를 이루는지 설명하는 장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최근 다시 이 책을 읽으며 다른 장도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물론 단백질의 일생을 봤을 때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성장/성숙(구조)에 여전히 큰 매력을 느끼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공부를 하며 시야가 더 넓어지고 조금 더 성숙해짐에 따라, 저는 나이가 든 단백질이 어떻게 죽어가며 그 죽음 이후에는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이런 점에서 단백질의 일생은 사람의 일생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RNA 구조생물학을 하고 있습니다. RNA 구조생물학은 방법론적인 면에서 단백질 구조생물학과 많이 겹치며, 최근 전자현미경과 컴퓨팅 능력의 급속한 발전으로 급부상하는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의 훌륭한 연구 대상이 됩니다. 현미경은 결국 여러 각도에서 본 생체 고분자의 사진을 찍어 입체 구조를 쌓아 올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제 마음을 편안하고 흡족하게 해주는 기술입니다. 요즘 저는 한 발 더 나아가, 실험이 안 될 때면 투명한 실험 용액이 담긴 microcentrifuge tube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합니다. 어느 순간 여기에 섞여 있는 모든 물질들을 볼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하면서요. 과연 이 안에 내 RNA나 단백질이 있을까요? 있다면 이 친구들은 지금 “happy”할까요? 눈으로 볼 수가 없으니 이렇게 답답할 데가 있나… 과학은 그저,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보고 있는 것과 같다’는 믿음의 영역은 아닐까요?

 

요즘 연구실에서 하는 일: test tube 안의 물질을 마음의 눈으로 보기, “나와라 가제트 눈!” (이미지 출처: Pixabay, Vika_Glitter)

 

처음 어떤 연구를 하겠다고 결심했던 순간이 생각나는 책이 있나요? 저는 오후 볕이 잘 드는 학교 도서관 창가에 앉아서 <단백질의 일생>을 몰입하며 읽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지금 제 책장 한편에 꽂혀 있는 이 책은, 실패한 실험을 뒤로하고 터벅터벅 집에 돌아오는 유학생을 위로해 줍니다. 적어도 무언가를 좋아했던 순수한 마음만큼은 아직 잃지 않았음에 감사합니다. 모두 이런 책을 하나 간직하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문헌

"The Inner Life of the Cell Animation." YouTube video, 1:15. posted by "XVIVO Scientific Animation," July 11, 2011, https://youtu.be/wJyUtbn0O5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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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미윤(필명)) 등록일2024.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