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변온동물 노화 앞당겨
성장 빨라지면서 텔로미어도 빨리 소실돼
2019년에 발행된 UN 보고서에 의하면, 지구상 800만 종의 생물 중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주된 이유는 인류에 의한 기후변화 때문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전 세계 멸종 위기종의 19%가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최근 기후변화가 어류, 양서류, 파충류 등 변온동물의 조기 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외계의 온도에 의해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의 경우 폭염과 기온 상승으로 성장률과 열 스트레스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노화현상까지 겪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스페인 오비에도대학 생물다양성연구소의 게르만 오리자올라(Germán Orizaola) 연구원이 국제 공동 연구진과 진행한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글로벌 체인지 바이올로지(Global Change Biology)’ 최신호에 게재됐다.
오리자올라 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은 변온동물들을 열 선호도에서 벗어나 온도 허용 한계에까지 이르게 한다”며 “폭염이 길어질수록 변온동물들의 생리학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진다”고 밝혔다.
기후변화가 변온동물의 노화를 빠르게 하는 이유는 기온 상승으로 인한 성장 가속화 속에 숨어 있다. 이 같은 성장 가속화는 단백질과 DNA에 산화성 손상을 입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염색체 끝에 위치한 텔로미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종의 노화는 생태계 전체에 영향 미쳐
텔로미어란 진핵생물 염색체의 말단부에 존재하는 특수한 입자로서, 염색체의 말단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세포분열이 반복될수록 텔로미어는 점점 짧아져서 결국 소실되고 마는데, 이것이 세포노화 등을 유발하는 원인의 하나로 추측되고 있다.
오리자올라 연구원은 “DNA를 보호하는 텔로미어가 빨리 소실될수록 세포의 퇴화 속도가 빨라지고 신체는 노화된다”며 “기후변화와 변온동물 노화 사이의 분명한 연관성은 이번 연구에서 처음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 같은 급속한 노화는 변온동물의 자연개체군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 집단에서 개체의 평균 수명이 줄어들면 자손 생산 능력이 저하된다는 것이라고 연구진은 경고했다.
수명이 단축되면 극심한 가뭄이나 홍수, 질병, 폭염과 같은 외부 현상에 의해 개체수의 회복 능력이 떨어지게 되며 자손을 생산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게 된다. 또한 한 종이 노화하게 되면 생태계의 다른 종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노화 자체가 생태계 전체의 먹이, 경쟁자, 기생충 등의 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생물종의 노화에 미치는 영향은 지금까지 거의 연구되지 않은 분야인데, 모든 것이 기후변화에 노출되는 변온동물에게 이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변온동물의 보존 및 관리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멸종 위기종 보존대책 추진해야
예를 들면 한 종의 물고기를 상업적인 이유로 포획할 경우 어획률을 정하거나 개체수를 평가할 때 기후변화에 의해 그 종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또한 이미 멸종 위기에 처해있거나 개체수가 적은 종의 경우 기대수명이 줄어들면 훨씬 더 위협이 커지므로 보존대책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연구진은 기온 상승으로 서식지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종들은 더 적합한 서식지로 이전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후변화로 인한 변온동물들의 이상한 행태는 최근 들어 이미 여러 연구들에서 밝혀지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을 포함한 공동 연구진이 호주 북동부 연안에 서식하는 푸른바다거북을 조사한 결과, 어린 거북의 경우 암컷이 99%에 이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이 같은 극심한 성비 불균형의 원인은 기후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바다거북의 알은 부화하는 동안의 모래 온도가 태어날 새끼의 성별을 결정하는데, 온도가 낮으면 수컷이 되고 온도가 높으면 암컷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성비 불균형으로 암컷만 남게 되면 멸종 위기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변온동물인 도마뱀은 기후변화에 특히 민감해 이미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진이 2010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멕시코에서는 도마뱀의 12%가 사라졌으며 2050년까지 전 세계 도마뱀의 5%, 2080년까지는 20%의 도마뱀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곤충들의 포식자이자 뱀의 먹잇감인 도마뱀이 사라지게 되면 생태계 전체에 걸쳐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2020.09.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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