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의 관점에서 생물을 바라본 과학자 [사진 한 장에 잠긴 과학자의 삶]<18>다르시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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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왼쪽)과 1940년대(오른쪽)의 다르시 톰슨. 그는 생물학과 수학을 연결해 독특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사진 옥스퍼드대학출판)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이자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었던 지난해는 다윈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끊이지 않았다. 오늘날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의 범위를 넘어 거의 모든 학문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만 하다. 그런데 사실 올해도 꽤 유명한(또는 독특한) 생물학자를 기념하는 해다. 영국의 생물학자 다르시 톰슨(D'Arcy Wentworth Thompson)의 탄생 150주년이기 때문이다. 그가 교수로 있었던 영국 던디대와 세인트앤드루스대는 올해 그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다윈과 달리 톰슨은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생물학자다. 사실 톰슨은 과학계에서도 오랫동안 잊혀진 인물이었으나 최근 생물학에 수학, 물리학적 관점이 도입되면서 부쩍 인용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특히 그의 대표 저작 ‘On Growth and Form(성장과 형태에 관하여)’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과학서적의 불후의 명작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 각론에선 반대 다르시 톰슨은 1860년 5월 2일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태어났다. 생후 1주일 만에 어머니가 죽자 수의사였던 외조부모에서 맡겨진 톰슨은 때때로 그리스 고전 학자인 아버지와 생활하면서 자연과학과 고전문헌학에 대한 소양을 쌓았다. 그의 책은 그리스어와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무차별 인용하고 있는데 ‘아는 게 병이라고’ 그의 인문적 소양이 후세의 독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18세에 에든버러대 의대에 들어간 톰슨은 2년 뒤 케임브리지대로 옮기며 전공도 바꿔 동물학 학위를 받는다. 1885년 불과 25세에 던디대 교수가 된 톰슨은 세인스앤드류스대로 옮기기 전까지 32년 동안 봉직했다. 그가 던디대에 세운 동물학박물관은 당시 영국 제일의 수준이었으며 특히 북극 동물 견본이 많았다. 톰슨은 여러 차례 해양탐사를 다니며 수많은 견본을 수집했다.
다르시 톰슨의 기념비적 저작 ‘성장과 형태에 관하여’. 1942년 증보판으로 111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사진 김인규) 1917년 57세인 톰슨은 세인트앤드루스대로 옮겼는데 이 해에 그 유명한 책 ‘성장과 형태의 관하여’를 출판했다. 25년 뒤인 1942년 내용을 대폭 보충한 개정판이 나왔는데 오늘날 팔리는 책이 바로 이 개정판으로 무려 1116쪽에 이른다. (기자는 3년 전에 이 책을 샀는데(아쉽게도 한글판은 아직 안 나왔다), 2장까지 보다가 질려서 결국 기사 쓰는데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데 만족해야 했다!) ‘성장과 형태에 관하여’는 분량도 방대하지만 무엇보다도 독특한 ‘시각’이 돋보이는 책이다. 당시 생물학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을 수용한 전통 생물학의 관점에 젖어있었는데 이 책에서 톰슨은 수학과 물리의 법칙을 생물학에 끌어들였다. 즉 생체 조직 같은 재료보다는 어떤 생명체의 형태가 있게 한 ‘힘’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 여기서 톰슨은 진화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다윈과 달리 비연속적인 극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성장과 형태의 관하여’의 가장 유명한 마지막 17장 ‘변형의 이론, 또는 관련된 형태의 비교에 대하여’는 톰슨의 천재성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생물의 형태에 좌표의 개념을 도입한 뒤 좌표의 변형을 통해 관련된 다른 종의 형태가 나타날 수 있음을 많은 실례를 통해 보여줬다. 그는 “우리의 기하학적 유사체들(변형으로 묶이는 종들)은 끊임없는 미세한 연속 변이라는 다윈의 개념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들은 불연속적인 변이가 자연스러운 것이며 돌연변이(또는 갑작스런 변화)가 일어나 새로운 유형이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쓰고 있다. 당시 생물학자들은 대부분 수학의 소양이 부족했기 때문에 톰슨의 주장은 비주류로 남았고 그의 책에 담긴 기하학적 이미지들은 오히려 건축가나 디자이너에게 큰 영감을 줬다. 그가 직접 그린, 좌표의 변환으로 생물의 형태를 비교한 그림들을 보면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없이 그런 패턴을 찾아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좌표의 변환으로 어류에서 종의 형태 변형을 해석한 톰슨의 그림. (사진 옥스퍼드대학출판) ●호메오 박스 발견으로 부활 1948년 88세로 사망한 톰슨은 그 뒤 오랫동안 잊혀졌지만 1980년대 초파리에서 ‘호메오박스(homeobox)’가 발견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호메오박스란 생명체의 발생과정에 관여하는 호메오 유전자를 포함한 DNA 염기서열이다. 그 뒤 초파리뿐 아니라 사람을 포함한 여러 종에도 호메오박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러 종에서 전혀 다른 구조를 보이는 형태도 각 호메오 유전자의 발현 패턴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윈 진화론의 상징인 ‘핀치의 부리’가 톰슨의 변형이론의 가장 적절한 예라는 사실이 수년 전 밝혀졌다. 즉 핀치 부리의 다양성이 Bmp4와 칼모둘린이라는 유전자의 발현패턴의 차이로 설명됐기 때문이다. 생물이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메커니즘은 유전자 자체의 돌연변이보다는(다윈의 관점) 유전자 발현 패턴의 변화(톰슨의 관점)에 있다는 증거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톰슨의 변형이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과학동아’ 2010년 8월호 ‘아핀변환으로 해석한 핀치 부리의 진화’ 참조) 최근 생명과학 분야는 수학과 물리학의 방법론이 급격하게 도입되고 있다. 생명정보학(bioinformatics)은 수많은 유전자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파헤치고 있고, 나노바이오테크놀로지는 세포의 형태나 생체분자의 상호작용에 미치는 전기력, 표면장력 등 물리적 힘을 해석하고 있다. “과학에 관심이 많지만 수학을 못해 생물학을 선택했다(또는 선택하려고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꽤 있다. 수학과 생물학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이런 사람들에 비한다면 한 세기 전 인물인 톰슨이 훨씬 현대적인(modern) 정신의 소유자가 아닐까. “우리는 수학적 정의가 일상적으로 쓰기에는 너무 엄격하고 경직돼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이런 엄밀함은 무한한 자유와 결합돼 있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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