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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실험실이 좋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건 언제나 어렵다

산포로 2024. 7. 4. 08:39

[그래도 실험실이 좋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건 언제나 어렵다

 

새로운 분석법을 찾는 과정을 해본 적이 있는가. 현장에서 일을 할 때는 정해진 시험 방법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업무의 특성상 정해진 시험방법이 있으면, 그걸 변형해서 할 수 있는 범위가 있었고 그 범위를 벗어나는 실험을 잘하지 않았다. 사실 굉장히 편했다. 분석법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기준이 생긴다는 것과 같았다. 기준은 그걸 기초로 연구를 진행하는 받침이 되어주었고, 누군가 제대로 정립한 분석법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이나 그 실험실에서 많은 후배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기본적으로 연구실이나 기업이나, 기존에 분석하던 항목이 있다면 그 분석을 계속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신규 분석법을 만들어야 한다면? 분석과 관련한 기본적인 지식에 문헌 조사와 다른 연구자들과의 소통까지 더해지지 않으면 새로운 분석법을 적립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다. 특히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초보 연구자에게는 논문마다 약간씩 다르게 기재되어 있는 연구의 조건, 기기의 상태, 분석하는 시료의 형태 등 다양한 변수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유추조차 하기 어려워 문헌을 분석하는 것부터 시간이 꽤 걸렸다.

 

위에서 말한 대로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는 대부분 법정 항목이 정해져 있었고, 그 항목에 알맞은 시험방법이 명확하게 지정되어 있었다. 사용하는 실험도구의 규격, 용량까지도 현장에 알맞게 제시되어 있었기에 그것을 따라 하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 아니었다. 당연한 것이었던 게 현장은 데이터를 모아 상황을 확인하거나 더 나은 대처법을 찾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현장에 따라, 시험자에 따라서 그 결과가 흔들리는 것을 최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도 당연히 분석항목마다 정해진 분석법이 마련되어 있었다. 매뉴얼이 있다는 것은 사람을 안심하게 만들어 주었다. 처음 분석을 할 때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분석법을 토대로 선배들에게 물어볼 수 있었으며, 순서가 혼동되어도 여러 번 참고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는 것이기에 신규 연구자들에게 마음 한구석의 믿을만한 구석이 되었다.

 

그랬던 시기를 거쳐서, 본인이 직접 연구실에 새로운 분석법을 셋업 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처음 신규 분석법을 알아보게 된 항목은 wax ester라는 항목으로, 배양하는 미생물 내에서 생산되는 물질로 미생물에서 추출하여 분석하는 방법에 대한 논문이 그렇게 많지 않아 참고할 문헌에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GC-MS 혹은 MS/MS로 분석하는 문헌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문제는 GC를 사용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우리 연구실에 GC-FID가 있었지만, 그 기기를 혼자 사용해 본 적이 없었으며 하필 그 기기를 사용할 줄 알던 선배도 주먹구구식이었던지라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고 졸업했었다. 기기의 이해부터 시작해야 했던 상황이었지만, 졸업을 바로 직전에 앞두고 있었던 지라 녹록지 않았다. 분석기기는 공동실험실습관, 일명 공실관에 있는 기기를 예약해서 사용해야 했고, 그마저도 직접 분석을 할 수 없고 샘플을 전처리하여 분석의뢰를 하는 형식이었기에 더더욱 어려웠다. 해당 기기로 하는 분석을 담당했던 연구원님께 조언을 구하고자 했으나, 그분도 미생물에서 추출하여 분석하는 과정은 처음 해본다고 말씀하셔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문헌뿐이었던 순간이었다. 결국 헤매다 헤매다 졸업 후에 다른 기관의 위촉연구원으로 채용되어 떠나면서 해당 분석법의 셋업은 연구실에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추후, 졸업하고 해당 분석법이 셋업 되었다는 소식에 연구실에 연락을 해보니, 불행히도 당시에 내가 셋업 하고자 했던 분석과정은 해당 항목을 분석하는 과정이 아니었다고 한다. 잠깐 현타가 왔지만, 내가 셋업 했던 과정은 wax ester를 fatty acid와 alcohol로 분해하는 과정이었고 다행히 wax ester 분석 과정은 셋업하던 과정보다는 쉬웠다고 한다. 하지만 진행하던 분석법의 셋업도 필요하다고 하여 후배가 담당해 진행 중이라고 하니 언젠가 그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연구실에서 들려온 기쁜(?) 소식

 

하지만 이후, 하게 된 업무가 신규 분석법 개발과 관련된 것을 보면 정말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현장에서 맡게 된 업무는 앞선 분석법 보다 더더욱 문헌이 적었고, 원하는 시료의 매트릭스(matrix)에 따라서 분석을 위한 전처리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연구 내역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분석법이었다. 표준물질을 구매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과정이었고, 해당 분석법을 사용한 논문의 저자에게 박사님께서 메일을 보냈었지만, 정확한 결과에 대해서는 답변을 받지 못했다. 또다시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실험 과정에서 불안한 점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전처리를 했음에도 목표한 물질이 제대로 추출되지 않는다면, 기기 분석 과정에서 제대로 정량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설정한 조건이 최적의 조건이 아니라면...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끝없을 것 같은 고찰과 고뇌를 거쳐서 나온 데이터로 겨우 한 바닥의 분석 과정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걸 바탕으로 다시 업무를 진행하고 있지만, 실험 방법의 셋업이 이거보다 더욱 늦어졌다면, 과제를 진행하는 일정이 통째로 딜레이 되었을 것이다. 잘 풀려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만약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의도치 않게 분석법 셋업과 관련된 일을 몇 번 해보고 나니, 모르는 실험에 대해 처음 하는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연구는 시간이 지나면서 능력치가 올라간다는 말이 정말 그대로 나타났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분석법 개발이라면 논문 몇 편을 봐도 버벅거리던 한 사람이, 논문을 보고 조건별로 정리해서 보고할 줄 알게 되었다. 점차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하나씩 늘어나면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 분석법 셋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얻게 된 힘이었던 것 같다.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분석법을 셋업 하는 것은 어쩌면 그 과정에서 필연적인 것일 수 있다. 처음은 두렵고, 또 끊임없이 내가 맞는지 틀렸는지를 검증하고 고찰해내야 하는 과정이 되겠지만, 그 과정 끝에는 또 다른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바로 연구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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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김틸다(필명)) 등록일2024.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