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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실험실이 좋습니다] 사소한 것부터 위기는 찾아온다

산포로 2024. 6. 11. 11:37

  [그래도 실험실이 좋습니다] 사소한 것부터 위기는 찾아온다

 

나는 평소에도 실수가 잦고 깜빡하는 일이 많다. 섬세하지 못한 면이 있고, 행동이 크다 보니 종종 있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 별명 중에는 덜렁이와 칠칠이가 있었다. 이런 덜렁이에게 실험실은 엄청난 위험요소가 가득한 곳이다. 널린 초자류는 모두 유리로 되어있고, 날카롭거나 뜨거운 위험이 곳곳에 위치한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게 되면 한 순간에 다치게 될 수 있다. 처음 실험실에서 일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하는 것들을 1부터 100까지 배우거나 눈에 보이는 대로 노트에 모두 적었다. 평소 내 행동과 성격을 알고 있었고, 당시에도 매 시기마다 진행했던 안전교육은 실험실에 들어갈 때마다 긴장하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하는 하루하루가 길어질수록, 실험실이라는 장소가 일상이 되어갈수록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커져가기 마련이었다. 간단하게 무언가를 하러 실험실에 들어갈 때 실험복을 입지 않거나, 실험하는 도중에 실험대 위를 그대로 두고 잠시 자리를 비운다거나 하는 일이 생겼다. 사실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다 보면 안전불감증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학교는 많은 연구시설을 수용하기에 오래된 건물이거나, 수도와 같은 시설이 불편한 경우가 많았고, 대학원생이 많다면 좁은 공간에 많은 인원이 연구를 진행해야 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현장에서 실험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현장이기에 안전관리가 더욱 철저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점차 안전에 대해서 조금씩 무뎌졌다. 실험대에는 갖가지 초자류가 널려있게 되었고, 사무실과 실험실을 왔다 갔다 하게 되면 실험복을 잠시 입지 않은 채로 실험실에 들어갔다 나오게 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렇게 불감증이 커져갈수록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인한 사고나 실수가 하나 둘 생겼다는 것이다.

 

한눈을 팔아서 일어나는 사건 중 가장 많이 일어났던 사건은 초자류를 깨는 일이었다. 실험실이 아닌 곳에서도 유리를 자주 깼었으니, 대부분의 초자류가 유리로 되어있는 실험실은 얼마나 심했을지 안 봐도 뻔한 비디오였다. 시험관에 시약을 넣고 흔들다가 실험대에 부딪혀서 깨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부터, 원심분리기에 유리 시험관 높이를 계산하지 못한 채 작동시켰다가 원심분리기 안에서 박살이 났던 일까지. 건조기에서 초자류를 꺼내 실험 준비를 하기 위해 실험대위에 늘어놓은 후 이동하다가 허벅지로 건드려서 와장창 떨어뜨린 일도 있었다. 

 

연구실에 500mL 메스실린더가 몇 개 없을 때의 이야기다. 하필 내가 세 개 중 하나를 깨고 말았다. 항상 비상 재고를 준비해 놓지만, 그때 마침 재고도 없었다. 유리를 처리하면서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고, 바로 물품 주문을 했지만 하필 물건이 오기 전까지 실험이 많이 있던 시기였다. 미생물 실험을 위해서 멸균기를 돌리고 건조가 된 후 사용이 가능했는데 메스실린더 두 개로 그 과정을 계속 반복하기는 정말 답답했다.

 

다행히 받침 부분만 깨져서 한동안 수습 후 사용했던 적도 있었다.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떨어뜨리는 사고도 굉장히 많이 있었다. 유독 물체의 부피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실험대의 모서리나 물품을 보관하는 선반에 유독 잘 부딪히는 편이었다. 부주의한 성격도 한 몫했다. 실험대의 높이가 낮은 곳은 허벅지 위쪽에 모서리가 닿았는데, 유난히 좁고 사람이 많았던 연구실에서는 특정 허벅지 위쪽에 항상 멍이 들어있던 적도 있었다.

 

이런 부주의함이 나에게만 피해를 입힌다면 다행이지만, 타인에게도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큰 사건은 누수로 인한 사건이었다. 대학원 연구실은 미생물 배양기를 운전하기에 곳곳에 수도가 배치되어 있었다. 퍼멘터의 경우 운전하는 동안 계속해서 물을 흘려보내며 냉각시스템을 돌렸고, 다른 반응기를 운전할 때도 수시로 배수되는 코스가 있었다. 누수의 정말 무서운 점은, 아주 작은 곳에서 물이 새어 나와도 시간이 지나면 실험실 바닥 정도는 흥건하게 적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학교 건물은 오래되었고, 어디에 어떤 틈이 있을지 모르는 상태였다. 

 

퍼멘터를 운전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누수를 호되게 겪었다. 당시에 고무호스로 가스, 물, 배지 등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멸균을 여러 번 해서 그런지 고무가 삭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운전하지 않은 기간이 긴 기기를 사용하게 되어 고무호스의 크기가 맞는지 대략적으로만 확인했던 잘못도 있었다. 냉각 역할을 하는 호스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이 다였다. 그래서 실링 테이프와 케이블타이로 연결 부분의 이음새를 마무리하고 물이 새지 않는 걸 확인한 후 퇴근했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단체 톡방을 확인했는데, 일찍 출근한 다른 동료가 실험실 문을 열었을 때 이미 물바다였다고 했다. 당시 아직 방수페인트로 실험실 바닥 시공을 하기 전이어서 쓰레받기로 물을 퍼고 걸레로 닦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몇 안 되는 통학하는 학생이었던 나도 빨리 준비해서 학교로 넘어갔다. 다행히 혼자서도 할 수 있었다고 말해주는 오빠에게 고마운 마음을 뒤로하고 어디서 누수가 되었는지 확인한 결과, 퍼멘터에서 물이 새는 것을 확인했다. 분명 퇴근 전까지 누수가 없는 걸 확인했는데, 퇴근 후 한 방울씩 누수가 되기 시작해 하룻밤 새에 실험실 바닥에 흥건하게 물이 샜던 것이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물이 실험실 바닥을 채우는데 하룻밤이면 충분했다는 게 놀라워 믿기지 않았다. 이후로는 퍼멘터를 운전하면서 누수에 대해서 훨씬 예민해졌다. 고무호스가 조금이라도 노화되는 것 같으면 바로 교체해서 멸균 후 분석을 진행하였고 한 방울이라도 누수가 되는 것 같으면 재조립하거나 이중, 삼중으로 보수를 했다. 이후 실험실 전체를 보수하면서 바닥을 방수테이프로 하고 하수구를 마련하면서 이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우리는 익숙할수록 그 속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 무뎌진다. 일상에서도 그러면 안 되지만 실험실에서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아주 작은 것부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 순간 실험하면서 치명적인 일들을 초래하게 된다. 그것은 작은 상처부터 동료와의 갈등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연구실 전체에 피해를 입히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연구하면서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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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김틸다(필명)) 등록일2024.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