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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실험실이 좋습니다] 몸 값보다 비싼 기기들

산포로 2024. 7. 12. 08:27

[그래도 실험실이 좋습니다] 몸 값보다 비싼 기기들

 

실험실에는 다양한 장비들이 있고, 장비의 가격도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다. 특히 고가의 장비인 경우 다루는 과정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수리비로 몇백만 원이 드는 것은 당연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구매에만 몇억, 수리는 몇백에서 몇천. 기업이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고, 학교 단위의 연구실에서는 한번 고장 나거나 소모품을 교체해야하는 시즌이 오면 괜히 무서워진다.

 

거기다가 학생들이란 얼마나 장비에 대해서 무지한가. 학교만 다니다가 대학원으로 들어온 학생들은 실제로 실험 기기를 다루어본 경험이 거의 전무했다. 학부생들이 졸업을 위해 들어와서 실험을 배울 때 피펫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가르쳤던 기억이 있다. 피펫을 쥘 때는 걸리기 전까지 내려서 빨아들인 후, 끝까지 내려 두어 번 꾹 내려서 안에 있는 용액을 모두 옮기도록 하는 걸, 가르치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실험과목을 배우더라도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사용법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업체에 전화하는 것도 큰 난관이다. 학교의 특성상 석사생들은 2년을 주기로 금세 나가고 들어오며 연구실원은 금세 바뀐다. 이미 전에 장비를 다루던 사람은 졸업했고, 원래 있던 선배들도 잘 모른다고 말할 때의 난감함이란. 난생처음 업체와 통화할 때는 심호흡을 했다. 해야 하는 이야기를 메모해 놓고 그걸 보면서 말할 때의 기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다행히 인턴과 계약직으로 근무하다가 대학원을 진학한 나에게는, 연구실에서 업체들과 통화하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학부생에서 바로 대학원으로 진학한 친구들이나 외국인들은 사정이 달랐다. 나는 가끔 대신 전화를 해주곤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익숙하지 않은 기기는 설명을 들으면서 검색을 하면서 옆에 있는 사람과 의논을 했어야 했다. 그나마 담당 엔지니어의 명함이 기기에 붙어있거나 연구실에 보관되어 있으면 정말 다행이고, 업체가 명시되어 있는 기기면 어떻게든 길이 보이지만, 학교의 경우 이 연구실 저 연구실을 떠돌다가 오게 된 기기는 업체도 오래되어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정말 동료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옆의, 옆옆의 연구실에 물어가며 기기 분석을 배웠던 시기도 있었다.

 

기기를 운전하는 것에 대한 문제는 두 가지 유형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이론이라도 학교 수업 혹은 다른 교육을 통해 들었지만 실제로 다루는 것이 처음인 유형과 이론을 하나도 모른 체 실무에 투입된 유형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전후 모두 포함되는 연구원이었다. 학부생 시절,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여러 실험을 해봤었지만, 전공이 달라져서 그때 실험은 그 이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기기도 현미경을 제외하고는 겹치는 것이 거의 없었기에 분광광도기, LC, GC, HPLC 모두 현장에서 일을 하며 분석 방법을 배웠다. 게다가 전공도 달라졌으니, 현장에서 배우는 일명 수분석 항목들은 전부 새로 하는 일들이었다. 처음 COD 분석법을 배울 때, 중탕기 사용법도 더듬거리며 배우고, 손이 떨려서 제대로 플라스크와 냉각기 부분을 분리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당시에 실험을 가르쳐주시던 과장님께서 많은 조언과 시범을 보여주신 덕분에 그 당시 배웠던 실험들은 동일한 항목을 하지 않은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더듬더듬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론을 몰랐던 것도 한몫했다. 학부생 시절 전공과 담을 쌓고 살았기에 대학교 졸업할 때쯤에는 사용할 줄 아는 분석기기가 거의 전무했다. 물론 선택과목에서 내가 이수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기기 분석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수업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연계열 학부 수업은 대부분 이론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크로마토그래피 기기의 원리가 무엇인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알지 못한 채 처음 기기 앞에 앉아 배운 건 method를 지정하는 것이었다. 원래 분석하시던 분이 자리를 비우면서 신입이던 다른 분과 급하게 기기 운용을 배웠다. 샘플은 어떻게 주입하고 용매는 어떻게 제조해서 준비하고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점을 배운 것이 첫 기기 운용이었다. 표준물질의 농도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기기를 사용해 본 선배나 동료들에게 운용, 분석, 관리 등 모든 걸 배워야 했다.

 

처음 GC를 사용할 때 있었던 일이다. 분석을 옆 실험실에서 배우기는 했는데 거기서도 알음알음 가르쳐준 상태에서 연구실의 장비를 운전해야 했다. 다행히 주 분석자는 내가 아닌 나의 선배였고, 나는 해당 분석법도, 기기 사용법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루는 퇴근하다가 장비가 이상하다는 전화에 일단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학교로 돌아갔다. 돌아간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택시 안에서 괜스레 더 초조했던 것 같다. 도착해서 상황과 고장 난 것을 단체 톡방에 올렸는데, 당연히 혼이 났다. 그때는 그게 괜스레 억울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배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기기는 무조건 고장이 난 상태고, 후배들은 멍청하게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손 놓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날을 계기로 모르는 기기를 사용하는 걸 꺼려했고, 운전법을 정확히 배우거나 매뉴얼이 없는 기기를 섣불리 사용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처음 기기를 사용할 때는 늘 두려웠다. 다행히 알고 나면 달라진다.

 

지금도 LC-MS/MS를 이용한 분석을 진행하고 있는데, 여전히 어렵다. 다행히 선배들의 도움으로 기기 사용방법에 대해 많이 질문하고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신규 물질을 분석할 때면 MRM 과정을 혼자 하다가 막혀서 여러 번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기기 운전을 하면서 관리 방법에 대해서도 기존에 아는 것보다 다른 방법들을 더 하나씩 배워갔다. 기기는 올바른 사용법을 배우면 더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고,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연구하는 우리는 평생을 새로운 기기들을 만나면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검출기 종류와 조합에 따라서 굉장히 많은 분석기기가 있을 것이고, 새로운 분석기기도 계속해서 발명되고 있을 것이다. 분석기기가 발전될수록 더 정밀한 물질을 더 작은 농도만으로도 검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끊임없는 배움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배움의 끝엔 언제나 새로운 발전이 있다는 걸, 새로운 능력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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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김틸다(필명)) 등록일202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