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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실험실이 좋습니다] 과연 논문을 쓸 수 있을까요

산포로 2024. 11. 13. 11:34


[그래도 실험실이 좋습니다] 과연 논문을 쓸 수 있을까요

 

글을 쓰는 것은 소소한 나의 취미였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에세이를 연재하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혼자 일기와 소설을 쓰며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초등학생 때는 글쓰기 상장을 1년에 열댓 개 넘게 수집했고, 인터넷 소설을 포함한 여러 책들을 섭렵하며 10대를 보냈다. 그랬던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글쓰기의 한 종목은 바로, 논문 쓰기였다.

 

내가 졸업한 학부는 졸업논문을 무조건 써야 했었다. 졸업 예정인 학생 몇몇이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간단한 연구를 하고 졸업 논문을 쓰고 발표를 한 후 교수님들의 평가에 따라 졸업 요건이 확정되는 식이었다. 당시에 나는 조기졸업을 목표로 하는 동기와 같은 연구실에서 연구를 진행했었는데, 동기는 한 학기를 일찍 졸업하게 되었고, 나는 마지막학기에 인턴으로 취업계를 내면서 졸업 평가는 남들보다는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연구실을 한번 옮기기도 했었고, 겨우겨우 써낸 논문도 앞서 조기졸업했던 친구가 없었으면 수월하게 작성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기회를 빌려 그 친구에게 굉장히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여하튼 온전히 나 혼자 쓴 학부 졸업논문이 아니었던지라 그때만 해도 논문 쓰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이후 논문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었다. 인턴과정에서 가장 많이 썼던 건 보고서와 자기소개서였다. 회사의 보고서란 대체적으로 정해진 양식이 있었고, 그 양식을 벗어나지 않게 내용을 채워넣으면 되었다. 단어와 내용을 고민하는 것에 그쳤던 보고서는 사실 논문보다는 훨씬 쉬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두꺼운 보고서를 쓰지 않았던 인턴 신분이었기에 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후 자기소개서를 많이 쓰면서 글 쓰는 실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구직시장은 생각보다 냉랭하고 가혹했으며, 여러 번의 불합격은 글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한 경험이었다.

 

본격적으로 쓴 첫 논문은 석사 졸업논문이었다. `학위졸업논문의 경우 대부분 양식이 정해져 있어, 양식에 맞춰 논문을 작성하면 되었다. 특히 연구실에서 비슷한 계열의 연구로 졸업논문을 작성한 선배들이 있다면 논문의 큰 틀을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장 쉬웠던 파트는 재료 및 방법(material and method)이었고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은 고찰(discussion)이었으며, 시간이 많이 걸렸던 부분은 의외로 literature review, 문헌 검토하는 부분이었다. 

 

나의 경우 가장 어려워한 부분은 결과와 고찰을 적절하게 서술하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결과는 연구 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고찰에는 다른 연구를 인용하여 데이터에 대한 다방면으로의 새로운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걸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고찰에는 데이터에 대한 나의 의견이나 새로운 사실이 없다고 많은 지적을 받았으며, 결과에 대해서 제시할 때는 객관적인 결과보다 주관적인 의견이 자주 담겨 서술되었다. 그렇게 적은 글은 첨삭해 주는 선배나 박사님에게 여러 질타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머리로 아는 것과 쓰면서 표현되는 것은 정말 달랐다. 더불어 나는 그 당시 연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데이터의 정확성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그 사실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기에는 글을 적는 "나"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내가 실험을 잘하고 내 실험 방법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과 달리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매우 편협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해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지고 설득하는 과정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대학원 시절에 그걸 해소하는 건 어쩔 수 없이 여러 피드백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랩미팅 때 나온 여러 말에서 정말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걸 녹음하거나 적어서 다른 말로 풀어 글로 나타내려고 했다. 석사 수준에서는 내 연구 데이터와 최대한 비슷하거나 혹은 비교할 수 있는 수많은 논문의 데이터를 보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었다. 그렇게 졸업논문의 [고찰] 부분을 무사히 작성할 수 있었다.

 
(출처: PIXABAY)

같은 데이터를 놓고도 사람마다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니 여러 의견이 나왔다. 나는 그 의견들 중에 내 의견이 틀렸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래서인지 논문을 쓸 때 고찰이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졸업논문에 들어가는 literature review는 논문의 절반에 가까운 양을 차지했다. 논문 주제의 가장 기초부터 관련된 대부분의 문헌을 조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양이 늘어났다. 게다가 분량을 늘리기 위해 연구의 목적에서부터 시작해 literature review를 작성하다 보니 다양한 논문은 물론, 기사나 칼럼을 많이 인용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정리해야 하는 참고문헌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내용의 추가와 재배치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앞에서 인용했던 문헌을 여러 번 재인용하며 순서가 꼬이거나, 중요한 내용을 찾아놓고도 제대로 기재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EndNote"를 비롯해서 참고문헌을 정리 및 관리하기 좋다는 여러 프로그램을 사용해 봤지만, 졸업논문에서 작성했던 literature review 부분은 결국 여러 번,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유난히 프린터 해서 보는 걸 더 선호했던 나에게 참고문헌 정리는 일을 두 번 하는 거라 더 힘들게만 느껴졌었다.


석사 졸업 후, 회사에서 처음 국문지를 작성할 때, 첨삭을 꽤 오랜 기간, 많이 받았다. 대학원 졸업논문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취업하면서 석사 때와 다르게 미생물에서 분석분야로 변경한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더불어, 한글로 어색하게 작성하더라도 영어로 바꾸면서 오히려 단어나 문구에 대한 고민은 적었는데, 한글은 그렇지 않았다. 대학원생 때도 국문지는 거의 접하지 않았고, 회사 와서 진행한 연구도 국내 사례가 전무했던 연구여서 주로 영어로 된 논문을 읽었다 보니, 국문지를 작성하며 가장 어려웠던 건 단어와 문장의 구성이었다. 

 

영어로 문장을 구성하는 건 의외로 한글보다 편하다. 영어는 한 문장이 수식(數式)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면 한글은 길게 이어진 수식(修飾)의 향연이었다. 게다가 단어를 선정할 때도, 영어에서는 한 가지 단어만으로 표현되었다면, 한글은 같은 뜻의 여러 단어를 사용하여 반복성이 크게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국어사전을 찾아볼 수도 없고, 한탄하며 chat GPT에 여러 번 물어봤다. "000과 같은 뜻의 다른 단어는 무엇이 있니...?" 의외로 이 어려움은 앞선 어려움들보다 빠르게 해결되었는데, 여러 편의 국문지를 읽으면서 괜찮은 표현이나 서술을 따로 모아두었다가 활용하면서 점차 나아졌다. 한글이다 보니 영어보다는 좀 더 수월하게 변형이 가능했던 것 같다. 

 

논문은 어렵다. 글은 쓰다 보면 본인의 성격이 녹아난다고 했다. 어렵고 획일적인 단어보다 횡설수설하고 앞뒤가 자유분방한 글을 주로 적었던 내게 논문은 더더욱 적기 어려운 작품 같았다. 일목요연하고, 사실이 명확히 표현되어야 하고, 다른 문헌이나 증거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해석하는 과정은 글을 쓴다기보다는 새로운 발견을 주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변론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연구 성과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설득하는 글은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논문을 쓰면서 스스로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연구해 온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고, 스토리를 만들어 결과물로 제작하는 과정은 엉망진창 왁자지껄이었던 연구과정을 누가 봐도 번듯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 또 어떤 부족한 점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글은 노력하는 만큼 성장하고, 도전하는 만큼 실력은 향상된다. 당장 지금만 해도, 가장 처음 적었던 논문의 초고와, 얼마 전 투고한 최근에 완성된 원고의 파일을 열어놓고 비교해 본다면 차원이 다른 글이 펼쳐진다. 고작 몇 년, 몇 편 사이에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글 마냥 전혀 다른 글이 놓여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적은 첨삭만으로도, 혹은 첨삭을 거의 거치지 않고도 투고할 수 있는 그런 연구원이 될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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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 Bio통신원(김틸다(필명)) 등록 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