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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통통 시즌4] 덜 아프고 연구하기 - 흑백요리사 100인분 리조또와 파이펫팅

산포로 2024. 11. 8. 13:51

“나폴리 맛피자님, 보류입니다.”

 

최근 들어 재밌게 본 한 예능, 여러분들도 보셨을까요?
보셨다면, 그중 어떤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으시나요?

 

수많은 명장면이 있지만, 저는 100인분의 리조또를 무심하게 해내던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출처 - Unsplash free image - Clem Onojeghuo   

 

저 또한 발 동동 마음 졸이며 리조또의 ‘익힘 정도’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내 자신의 페이스대로- 리조또를 겨우 몇 개의 팬에 나누어 만테카레를 하는 나폴리 맛피아 님의 모습을 보며
“와! 20분 안에 되겠는데?” 하며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한편 “아이고 근데 저걸 한 번에? 너무 무겁겠다 손목 아파서 어떡해”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더라고요.
사실 ‘주방’은 무거운 철근을 옮기거나 추락의 위험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위험할 수 있는 작업 장소 중 하나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통통 튀어 오르는 기름에 데고,
조금 더 빨리 해보겠다고 서두른 칼질에 손가락이 베이기도 하잖아요.
그럼에도 주방은 위험한 작업장, 요리는 위험한 작업이 아니라는 생각에 더욱 다치기 쉬워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오랜 시간을 보내는 작업공간인 ‘실험실’을 생각하면 어떠세요?
마찬가지로, 또, 모순적이게도 실험실에서 먹고, 일하고, 자는(?) 과학자들은
‘실험실이 그렇게 위험한가?’ 하는 생각을 하실 것 같습니다.
물론, 머리로는 위험한 요소가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실험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안전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커집니다.
포름알데히드는 후드에서 조심히 다루고, 오토클레이브도 충분히 압력과 열을 뺀 뒤 두꺼운 장갑을 끼고,
섹션을 위한 트리밍, 칼날을 가는 작업도 어느 때보다 신중히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빈번히 일어나는 화상이나 베임 사고 외에도, 실험실에 큰 위험으로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히려 너무 일상적이고, 안전해 보여서 잘 실감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파이펫팅에 의한 근육 및 관절 반복사용에 의한 위험으로부터 노출되어 있죠.
요리사들이 칼질이나 화구에서의 화상을 조심하더라도, 웍질이나 음식 재료 섞기 등을 피할 수 없듯이,
생명과학자들은 미니프렙부터 PCR, 나노드랍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파이펫팅을 피할 수 없습니다.

 

파이펫은 특히 분자생물학 실험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빨대처럼 용액을 조심스레 흡입하고, 뱉어내는 과정을 통해 이동시킨 초창기 파이펫에 비하면,
손가락이나 기껏해야 손목 관절 정도만 이용하는 지금의 파이펫은 극적으로 안전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펫팅이 건강을 위협할 수 있을까요?

 

▷ 까딱까딱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들

 

어떤 동작을 많이 하면, 더 많은 근육을 사용하면 언젠가 ‘단련’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들지만,
잘못된 자세로 수행하는 반복적인 움직임 잘못된 기구 사용은 곧 근골격계 질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큽니다.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직업군에서 몸에 부담을 주는 키보드, 마우스 사용 등으로 인해
손목터널증후군과 같은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경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지요?
연구에 따르면 파이펫을 장시간 사용하는 실험실의 연구자들 또한
손목 터널 증후군, 건초염, 테니스엘보, 방아쇠수지 와 같은 근골격계질환을 경험할 수 있으며,
특히 손가락과 엄지에 큰 부담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전공을 살려볼까요?

 

건강문제, 질병으로 고생하면서 최근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 중 하나는 해당 기관의 해부학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발이 아프면, 발의 골격구조, 근육, 신경의 모양을 파악해야 하듯
손목이나 손가락이 아프면 내가 주로 손으로 무엇을 하는지,
그 동작들이 왜 무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손의 작동 원리(!)에 대해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지를 누르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Katz, J. N., & Simmons, B. P. (2002). Carpal Tunnel Syndrom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46(23), 1807-1812. https://doi.org/doi:10.1056/NEJMcp013018 


손바닥이 나를 보게 향하고 손과 위 figure 속의 해부도를 번갈아 보시면서 상상해 보시면 더욱 크게 와닿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손을 살펴보면, 손목과 손바닥 쪽의 손목 터널(Carpal Tunnel) 부분
팔뚝부터 그 손목터널을 지나서 손가락 쪽으로 연결된 정중신경(Median Nerve) 
그리고 손가락과 엄지로 이어지는 총 9개의 굴곡건 또한 손목터널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손목터널증후군으로 통증을 경험할 때에는 손목터널의 압력이 증가되며 정중신경이 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외에도 신경이 눌리며 경험하는 통증은 잘못된 손목 자세, 손가락의 사용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미지를 누르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Lu, M.-L., James, T., Lowe, B., Barrero, M., & Kong, Y.-K. (2008). An investigation of hand forces and postures for using selected mechanical pipettes. International Journal of Industrial Ergonomics, 38(1), 18-29. https://doi.org/https://doi.org/10.1016/j.ergon.2007.08.006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파이펫은 상단 figure 속 가장 왼쪽의 axial pipette의 모양입니다.
파이펫을 사용할 때 에는 Model A와 같은 손의 자세를 취하게 되지요.
파이펫을 쥐었을 때 아래쪽 손날이 살짝 상단으로 치켜 올라가는 손 모양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손날이 --- 이 모양이 아니라 \ 이런 식으로 살짝 올라갑니다.)

 

(이미지를 누르시면 연결된 논문에서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Lee, Y. H., & Jiang, M. S. (1999). An ergonomic design and performance evaluation of pipettes. Appl Ergon, 30(6), 487-493. https://doi.org/10.1016/s0003-6870(99)00011-3 

Eject button이 위쪽에 위치하는 경우 엄지를 치켜올려드는 손 모양을 하고,
엄지를 꿈뻑꿈뻑 움직이는 동작을 계속해서 수행하게 됩니다.
파이펫의 길이가 길수록 내가 서있는 혹은 앉아있는 상황에서 손을 높이 들어야 하므로
그 과정에서 손목뿐 아니라 어깨나 목의 부담도 더해집니다.

(이미지를 누르시면 PDF 파일에서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Kevin J. Costello, C. E., The DuPont Company. (2004). Laboratory Workers Commonly ReportWork-Related Musculoskeletal Disorders from the Use of Manual Pipettes - Ergonomic Science May Hold the Key to Prevention. www. LaboratoryEquipment.com


(이 comfort zone of motion figure와 제가 실험할 때의 자세를 비교해 보면
저는 너무 깊은 영역까지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고, 너무 넓은 가동범위의 움직임을 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씩 연구실에서의 습관과 비교해 보세요!)

 

▷ 그렇다고 파이펫을 안 쓸 수는 없잖아요

가장 처음 말씀드렸던 것처럼, 파이펫팅을 안 할 수도 없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실 것 같습니다.
아래의 파이펫처럼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파이펫을 사용하는 것 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팔을 너무 높이 들지도, 너무 낮게 내리지도 않는 자세에서 적은 노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파이펫팅 하는 디자인의 파이펫
이런 종류의 파이펫을 구매하는 것이 부담이 된다면, 

 

(1) 적어도 엄지손가락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부드러운 ejection button의 파이펫으로,
(2) 볼륨 조절 또한 크게 힘 들이지 않는 레버 식의 파이펫을 고려해 보세요.
(3) 기존의 파이펫에 비해 손이 작거나 크다면, 손에 딱 맞는 사이즈의 파이펫을 고르는 것 도 중요합니다.

 

기구를 바꾸기 어렵다면,
작업에 있어서 반복적인 작업을 최소화하는 게 좋겠습니다.

 

'어차피 금방 끝날 건데' 하는 마음으로 불편함을 감당하시기보다,
섬세한 용량 사용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많은 양의 작업을 할 때에는 멀티채널 파이펫을,
비슷하게 같은 용량을 옮기는 것이 반복되는 작업이라면 전동파이펫을 적극 활용해보세요.

 

저는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번쩍이는 영감으로 써 내려가지도 못합니다.
수많은 작가님들이 그러하듯 저도,
아니, 재능은 커녕 한참 애송이인 저는 더더욱-
때때로, 어쩌면 자주 글 쓰는 일이 버겁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통통 연재를 통해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즐겁게 공유하고 싶습니다.
모두에게 스쳐 지나가는 글 일지라도 그중 단 한 명쯤에게는 유용하고, 의미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어서
더 많이 읽고, 더 재미있게 나누는 연습을 해보려고 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항상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런 마음을 담은 시와 함께 오늘의 연재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 토끼풀 >

 

삶이란 원래 

 

자잘한 걸

 

삶이란 처음부터 

 

일상적인 걸

 

촉촉한 손을 내밀어 

 

꼭 잡아주면

 

이렇게 행복인 걸

 

세 잎이면 어떻고

 

네 잎이면 어떠리

 

바람이 불면

 

같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 끝에 오는 슬픔도

 

같이하면서 함께 일어선다

 

옹기종기

 

- 김윤현 - 

 

References

 

Lu, M.-L., James, T., Lowe, B., Barrero, M., & Kong, Y.-K. (2008). An investigation of hand forces and postures for using selected mechanical pipettes. International Journal of Industrial Ergonomics, 38(1), 18-29. https://doi.org/10.1016/j.ergon.2007.08.006 

 

Lee, Y. H., & Jiang, M. S. (1999). An ergonomic design and performance evaluation of pipettes. Appl Ergon, 30(6), 487-493. https://doi.org/10.1016/s0003-6870(99)00011-3 

 

Kevin J. Costello, C. E., The DuPont Company. (2004). Laboratory Workers Commonly ReportWork-Related Musculoskeletal Disorders from the Use of Manual Pipettes - Ergonomic Science May Hold the Key to Prevention. www.LaboratoryEquipment.com

 

과학으로 통 통, 과학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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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 Bio통신원(정민정) 등록 2024.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