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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생애주기별 고민거리] (2) 전공선택

산포로 2024. 9. 13. 08:59

  [과학자의 생애주기별 고민거리] (2) 전공선택

 

필자는 꽤 이른 시기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고, 그에 맞춰 계획적으로 복수 전공을 준비했다. 소위 말하는 아웃사이더(아싸)였던 터라, 대학원에 간다고 해도 주변에서 얻을 정보가 없었고, 여기저기 구글링을 통해 대한민국에서는 “설카포”가 제일 좋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중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카이스트였기 때문에, 학점 관리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곳에 비해 접수 마감 일이 유독 빨랐던 카이스트는 어영부영하다가 접수 기한을 놓쳐 지원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도 원하는 시기에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혼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소한의 영어 성적, 꽤 잘 관리된 학점, 전공 공부 등. 어느 분야로 갈지 마음이 정해지자, 집 근처 대학 중 괜찮은 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교수님들께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대부분은 무시당했고, 일부 교수님들은 전공 이름이 애매하다고 느끼셨는지 성적표를 요구하셨다. 물론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다 비슷비슷한 생물학 계열 전공이라지만, 교수님들은 정말 비슷한지, 그리고 지원자가 대학원 과정을 따라올 수 있는지를 수강한 강의 목록으로 판단하셨다.

 

대학교는 물론 대학원까지도 이 전공이라는 것이 참 중요하다. 항암제 개발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연구를 하는 생명공학과, 식품영양학과, 약학과, 그리고 의학과를 놓고 보면 발표되는 논문의 분야도, Impact Factor도, 연구 과제의 연구비 규모도 모두 다르다. 이러한 차이들은 쌓이고 쌓여 연구 환경도 변화시키며, 대학원생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까?

 

연재 첫 번째 주제는 전공 선택이다. 

 

2024년 상반기, 한국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토픽은 단연코 의대 입시 증원일 것이다. 2,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입시 증원 소식은, 적어도 대부분의 수험생들에게는 희소식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의대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거니까?)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듯하지만, 어쨌거나 사실상 의대 증원은 확실시되었고, 이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입시학원들은 의대 입시와 관련된 설명회를 앞다투어 개최했다고 한다. 돈도 잘 벌고, 명예도 따르는 의사라는 직업은 분명 매력적이다. 필자도 갈 수만 있었으면 의대에 갔을 것이다. (MD-Ph.D의 파워는 막강하다.)

 

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이런 전공 말고, 그 이외의 전공은 상황이 어떨까? 주위에서는 일부 의약보건계열을 제외하고는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고, 정년까지 그 일을 지속하는 것이 꽤나 어렵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84년생인 필자의 친인척 중 한 분은 등록금 부담 때문에 원치 않은 대학에 진학했고, 사회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막상 졸업 직후에는 전공과 상관없이 취미로 배운 일본어를 활용하여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서비스직에 종사했다. 지금은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계신다.

 

요즘은 대학 전공과 상관없이, 뒤늦게 코딩을 배워 개발자가 되는 경우도, 운동을 좋아해 트레이너가 되는 경우도, 일반인이 대형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는 경우도 참 많은 것 같다.

 

성인이 된 이후로 거의 대학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필자는 실제 사회 분위기가 어떤지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대학원생, 연구원 또는 포닥분들이 전공을 살려 일하는, 몇 안 되는 직장인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그리고 고등학교 3년에 준하는 교육을 마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고등학교 졸업자의 73.7%가 대학에 진학했다고 하니, 고3 100명 중 73명이 대학에 입학한다고 볼 수 있다. 통계를 보면 이미 2000년부터 대학 진학률이 62%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IMF가 지나간 지 얼마 안 된 시기임에도 고3 학생의 절반 이상이 대학에 진학했다는 것이다.

 

고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 현황  (출처: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분석자료집)

 

필자 또한 모두가 그렇듯 수도권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지금처럼 대학 진학을 하는 게 당연한 시대였고, 단 한 번도 대학에 가지 않는 옵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대학원서를 쓸 때 발생했다. 원서는 어느 대학교 어느 과에 지원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쓸 수 있다. 하지만 으레 모든 고3들이 그렇듯 필자 또한 전공과는 관계없이 지원 가능한 많은 대학교에 마구잡이로 원서를 냈다. (당시에는 수시 원서 제출에 제한이 없었다.)

 

필자는 그래도 과학 과목을 좋아했기에, 이공계 계통의 전공을 골라 지원했지만, 당시 같은 반 친구들 중에서는 점수에 맞추느라 붙어도 절대 안 갈 것 같은 이상한(?) 학과에 원서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한 군데도 못 붙었을 때를 대비한 보험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등학교 기간 동안 배운 과목이 상당히 다른데도 불과하고 문과 출신이 교차 지원이 가능한 이공계 학과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사회와 같은 평범한 고등학교 수업을 받고, 그것을 기반으로 평생의 커리어를 좌지우지할 전공을 선택해야 했으니, 그것은 필자를 포함한 모든 수험생이 그때까지 경험한 것 중 가장 큰 시련임이 분명했다.

 

이렇듯 점수 맞춰 대학에 가던, 전문대에 가던 대학입시는 당연히 치러야 할 숙제였고, 대학 졸업장은 당연히 가져야 할 ‘자격증’이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성인의 대부분은 무언가를 전공해야만 했다..

 

필자는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후, 진학할 분야(관련 분야)로 주전공을 바꾸고자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굳이 전과를 하지 않고, 복수 전공을 신청했다. 그래도 복수 학위가 주는 이점이 있을 것이고 나중에 필자의 능력을 증명하는 데 이것이 꽤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대학원 컨택 시, 교수님께서는 전공 적합성을 평가하기 위해 필자의 이수 과목을 면밀히 검토하셨고, 복수전공을 한 덕분에 원하는 대학원 전공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 선택을 한 것을 꽤나 후회하고 있다.

 

필자 개인의 의견이지만, 자의든 타의든 대학원에 갈 계획이 있는 학생들은 주전공을 매우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대학에서 연자를 초청하여 진행하는 세미나를 보면, 꼭 거치는 과정이 있다. 좌장의 연자 이력 소개가 그것이다. 이 연자가 ‘어느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고, 어디서 어떤 전공으로 박사를 받았으며, 포닥을 어디서 얼마큼 했는가’가 얼마나 좋은 논문을 몇 편 썼는지보다 먼저 설명된다. 그만큼 전공은 과학자의 Identity를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필자는 박사 학위가 있으면 학부 대학 또는 학부 전공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대학원에 와서야 Academic field에 있는 박사들에게는 학부 주전공이 평생 따라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대학 임용에 도전하더라도 학부 주전공은 꽤나 영향을 준다고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회사 취업 시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는 듯하다.) 

 

대학원은 진정한 지성의 요람이다. (흔히 대학이 지성의 요람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대학원이 그러하다고 콕 집어서 말하고 싶다.) 회피성으로, 또는 취업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대학원은 학문 탐구를 위한 기관이다. 아무리 한량 같은 대학원생일지라도 졸업을 위해선 논문 하나라도 읽고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이 요구되며, 그러기 위해선 전공 지식이 필요하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전공 지식이다.

 

필자가 박사 졸업을 앞뒀을 무렵, 갓 입학한 신입생이 있었다. 출신 대학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연구에 대한 열정이 매우 큰 학생이었다. 매일매일 열심히 논문을 읽고, 열정적으로 실험을 했던 학생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통합과정으로 입학했던 그 친구는 대학원을 채 5개월도 다니지 못하고 자퇴를 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해력이었다. 그 학생은 전공 지식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아주 간단한 실험 원리도 이해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스트레스를 받던 그 학생은 건강이 나빠진 것을 계기로 자퇴를 결심했고, 홀가분한 얼굴로 연구실을 떠났다.

 

학부 졸업을 위해서는 통상 120~140학점(전공 60학점)이 필요하다. 한 과목이 3학점이라면, 최소 40개의 과목을 수강해야 하는 셈이다.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4년 동안 자연스럽게 접하는 40여 개의 강의와 전공 지식은 분명 대학원생인 우리에게 밑거름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 전공은 대학원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지 않는 학생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되도록 고등학생 때부터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 최선의 선택을 하길 바란다. 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인 학부생들에게는, 가능하다면 명문 대학에서, 연구비 지원이 풍부한 분야의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하고 싶다. (물론 무엇보다 훌륭한 교수님을 사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학이 BK나 센터급의 큰 과제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소속 교수들이 우수한 연구 실적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명문대일수록 연구력이 뛰어난(실적이 많은) 교수가 있을 확률이 높다. 실적이 좋은 대학은 대형 과제를 많이 맡고 있으며, 이렇게 연구비가 풍족한 대학은 연구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대학원생의 처우와 직결된다. 전공 분야도 중요하다. 같은 연구를 하더라도 지원을 많이 받는 전공(학과)을 선택하면, 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학위를 마칠 수 있다.

 

AI tool을 이용하여 생성한 전공선택 이미지 : 무엇을 선택하든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 박사 커뮤니티에 접속했다가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Computer Science (CS)를 전공하고 싶다'는 글을 보았다. 이미 한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들도 여전히 전공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CS는 한물간 분야였으나 IPhone과 ChatGPT가 등장하면서 판세가 이렇게나 바뀌었다. 이런 상황을 보니 지금 어떤 전공이 흥할지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에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정답은 없다. 다만,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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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메기(필명)) 등록 202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