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에게도 쉼표가 필요하다] 기초 없는 응용이란 없다
기초과학을 하고 있는 나는 특히 기초가 중요하다 말한다. 응용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초는 존재할지 몰라도, 기초가 없는 응용이란 없다.
생각해 보았는가? 닭이 계란을 낳지 않을 순 있어도, 계란이 닭 없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탄탄한 기초 공사가 없이 건물을 아무리 높이 쌓은 들 그 건물은 쉽사리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돈도 안 되는 기초개발 혹은 R&D (research and development)에 돈을 왜 그렇게 투자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는 말이 나에게는, 씨를 개발하고 뿌리는 것에 돈 쓰지 말고 수확하는 것에만 돈 쓰자는 말처럼 난센스로 들린다.

그리하여 기초과학이나 R&D에 관련된 학회들은 점점 사라지고 돈 되는 응용 쪽 학회들만 유명해지고 있다. 실생활에서 쓰이는 응용 쪽에 사람들이 더 흥미로워하는 사실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허나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여 어떤 것이 그런 응용에 시초가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대학원을 가서 처음 학회에 갔을 때는 나와 관련된 연구가 많이 없어서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반면 해외 post-doc 중에 갔던 학회에서는 볼 것이 너무 많아 반만 듣고 또 이동하고 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똑같은 학회에 참여한 다른 누군가는 너무 볼 것이 없었다고 하더라. 그때 알았다. 대학원 때 갔던 그 학회도 누군가에게는 너무 흥미로운 학회였을지도. Post-doc 때의 나는, 궁금한 것 많은 보스 덕에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실험방법도 이리저리 많이 해보거나 들어봐서 관련된 것들이 다 흥미로워 보였다. 아마 나도 보스와 함께했던 그때의 경험들이 없었으면 그중 10분의 1도 모르는 사람이었을 테니 참 재미없는 학회였을지도.
연구비 따기는 어떠한가. 기초 과학에 대한 연구비라더라도 단연 질병과 관련 지어 사실이 될지 아닐지 관계없이 응용될 가능성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해야 그 확률이 올라간다. 그리고 내가 놀랐던 사실은, post-doc때 그 연구실의 연구비에는 구체적인 질병에 관련한 응용 등의 설명은 없었고, 논문을 작성하면서도 질병과 관련 있는 프로젝트도 있었지만 아닌 것들을 굳이 억지로 질병과 연결 지어 응용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하지 않고도 논문은 나갔고, 심지어 모든 리뷰어로부터 긍정적인 메시지로 리비전 없이 accept 된 경우도 보았다. 그렇게 응용을 하는 쪽은 생각하지 않고도 순수 궁금증으로 연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한 시기를 보냈었다.
한 세미나에서 만났던 미국인 교수는 자기의 연구가치를 알아주는 투자자나 벤처회사들과 일을 하며 응용으로 까지 쓰일 수 있게 함께 성장해 나간다고 했다. 그의 연구가 어떻게 질병에 적응될 지에 대한 응용은 물론 벤처회사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함께 개발해 나간다고. 그전까지 나는 기초와 응용은 별개라고 생각했고 나는 응용 쪽을 생각하는 데는 무지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왕 하는 기초 응용되면 좋을 것이고, 그는 그쪽 생각을 좀 더 빠르게 잘하는 사람들과 하면 되겠더라. 그걸 알아봐 주는 투자자나 벤처회사들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힘들게 질타받던 시절을 겪었던 연구로부터 Covid virus에 대한 mRNA백신도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그러니 당장 특정 질병과 관련하여 응용에 별 볼일 없어 보일 지라도 그 또한 또 다른 길을 제공해 주는 단서가 될지 모르니, 그저 궁금해서 하는 순수 기초 과학도 어느 정도 지원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미국에서 거의 10년을 살면서 미국이란 나라가 크게 대단하지 않다는 것만 깨달았었다. 그래도 미국이 여전히 세계를 압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영어가 세계 공용언어이고 달러가 세계공통화폐라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계속 과학적인 발전에서도 세계 1위인 이유는, 미국 국민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 똑똑한 여러 나라의 인종들이 모여 열린 마음으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도전을 끊임없이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 끊임없는 실패의 반복 속에서도 끊임없는 지원이 뒤따랐던 것이다.
재미있게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기 나라가 선진국임을 모르는 국민이 우리나라 국민이라고 한다.
Post-doc때 많은 나라의 인종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나 또한 내가 너무도 당연히 여기던 권리나 편리함을 모르고 그저 미국을 동경했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심지어 미국에서 태어난 2세들도 백인이 아니면 그저 외모만 다르다고 아기 때부터 흔하게 차별받는 것들을 보았고, 차사고처럼 종종 총기사고가 내 근처에서 일어나는 곳, 좋은 의료시스템이나 빠른 인터넷 등 안전하고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는 곳이 미국이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어느 정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다른 몇몇 나라에서는 내가 불편하고 부당하다 느낀 미국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보다 낫다 생각하여 돌아가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다고 하더라.
그리하여 반대로 한국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면서 미국 땅에서야 비로소 애국자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세계 최초의 발견은 못할지라도, 우리만의 근성으로 최대한 빨리 따라잡아 순위권 안에라도 드는 것이 나는 너무 대단하고 자랑스러웠다. 각자의 사정으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러니 선진국답게 돈 되는 일부 산업 부분으로 치우쳐진 개발이 아니라, 다양한 산업으로 다양한 부문에 투자가 “기초”와 “응용”에 아울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응용은 돈 된다 하면 거장의 투자자들이 알아서 움직이고 나머지는 뒤따른다. 그러니 기초과학이야말로 정부나 연구재단에서의 특별 보조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기초연구는 정부기관들에서 많이 이루어지지만, 예산 삭감 등의 일을 직면했을 때 모두가 발맞춰 shot down을 진행하여 배 째라 나와 타협을 이끌어 낸다. 물론 기초연구기관 그 내부에서의 차별, 비리 등 안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허나, 그는 어느 나라 어느 집단에서나 있는 일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도 최소한 기초과학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예산 삭감을 하면 일 안 하겠다고 나랏일을 멈추게 하는 힘을 갖췄으면 좋겠다. 쉽지 않은 바람이겠지만.
그러니 돈 안 되는 과학하고 있다고 기죽을 것 없다.
그 돈 갖다가 그 정도 결과 밖에 나오지 않냐고 누군가는 욕할지 몰라도, 당신이 하고 있는 그 기초가 훗날 어떻게 사용될지 그 잠재적인 가치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마다 저마다 꽃 피우는 시기가 다르듯, 연구에서도 그 꽃 피우는 시기는 내가 살아있는 시점이 될지 그 다 다음 세대가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꽃이건만 이를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뿐. 최소한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 그들을 응원은 못해줄망정 질책하고 비난하고 부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남들이 보기에는 시계의 초침 분침 시침만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계 안의 그 어떤 작은 부품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시계는 멈춘다. 각자의 자리에서 기초와 응용이 함께 성장해 나가는 날이 오면 신명 나게 연구할 맛이 날지도.
오늘도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일하고 있는 당신은, 인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을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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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닥터아모스(필명)) 등록일2024.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