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둥지는 ‘왜·어떻게’ 만드나... 아름다운 초유기체
최근 개봉해 눈길을 끌었던 영화 「그녀가 죽었다」(김세휘 감독)에는 독특한 장면이 나온다. 바로 유리 벽 안의 개미 둥지다. 주인공 구정태(변요한 배우)가 취미로 키우는 개미들은 관찰의 대상이다.
개미들을 그토록 좋아하는 건 그들의 움직임에 ‘어떤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분명 개미들이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게 보인다. 구정태는 ‘개미 아빠’라는 닉네임으로 부동산 카페에서 활동할 정도로 개미를 사랑한다. 그만큼 개미는 흥미로운 곤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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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개미는 왜 둥지를 짓고 군락을 형성해 살아갈까? 심지어 각자의 역할을 정해놓고 거기에 순응하는 것처럼 진화했다. 우선 그렇게 보인다는 것일 뿐, 모든 개미가 순응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알 수도 없다. ‘경이롭고 아름다운 지하 건축 탐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개미 건축』에서 그 실마리를 일부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토대로 최선의 대답을 해보자면, 그건 바로 ‘개미와 초유기체로서 생존과 생태적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월터 R. 칭클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25년 동안 플로리다 북부 해안 평야 숲에서 진행한 개미의 지하 세계 탐험”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칭클 교수에 따르면, “둥지를 만드는 행동은 개미와 사회성, 이 둘의 진화보다 먼저 일어난 것”이다. 개미한테도 안식처가 제1순위인 셈이다. 거기에는 분명 규칙과 질서가 존재한다.
먹이·재료를 둥지로 가져오는 본능
개미의 직계 조상은 육식성 말벌이다. 좀 더 정확히 보면 개미는 백악기 말벌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해 왔다. (<참고문헌> 2.) 그런데 육식성 말벌이 혼자 지냈기에 둥지는 작았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둥지 안에는 새끼 말벌들만 있었을 것이다. 말벌과 같이 개미들도 둥지를 만들어 지내고 있다. 아울러, 이들의 공통점은 먹이나 재료 등을 둥지로 계속 가져온다는 점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개미의 종까지 숫자에 넣는다면, 개미는 2만∼4만 종에 이른다. 칭클 교수는 알래스카 북극에서 렙토토락스 무스코룸(Lepthothorax muscorum) 표본을 채집한 적도 있다. “북극 지역의 개미 중 북아메리카에서 시베리아에 걸쳐 서식하는 종은 단 두 종뿐이다.” 그가 발견한 개미 군락은 운이 좋게 햇빛을 흡수하는 자리에 위치했다. 칭클 교수는 “겨울에는 둥지와 그 안의 모든 것이 완전히 얼어붙어서, 봄이 와 해빙될 때까지 생활이 중단된다”라고 적었다. 개미의 처절한 겨울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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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지도 없이 건축을 설계·시공
중요한 질문은 개미들이 왜 둥지를 만들고, 어떻게 만드느냐이다. “작은 생명체들이 이렇게 거대하고 복잡하며 아름다운 것을 짧은 기간 동안 어둠 속에서 도면이나 지도도 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 다른 질문은 다음과 같다. “개미들은 수직 통로로 이동하면 더 빨리 도달할 수 있고 덜 수고스러울 텐데 왜 나선형 통로를 만드는 것일까?” 개미 둥지에는 어떤 미학적 요소까지 가미돼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아름다움에 실용적 목적은 없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과학은 그 이유를 아직 알 수 없다.
칭클 교수는 『개미 건축』이 “하이테크 과학의 시대”에서 “로테크 초절약 과학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서문과 후기에서 강조했다. 그만큼 이 책은 과학 하는 과정에 더욱 주안점을 둔다. 개미 둥지를 파헤치기 위한 사전 작업부터 실행, 그 이후 분석과 여러 과학적 가설에 대한 반증과 검증 말이다. “내가 발굴한 둥지 중 가장 큰 둥지는 약 11미터에 달했다.”, “개미는 15킬로그램의 모래를 파내 둥지를 만든다.”
그렇다고 개미 관련 재미있는 과학적 이야기들이 빠진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기후에 따라 개미들이 둥지 만드는 장소가 달라진다. 습한 열대 지역에서는 개미 종의 약 2분의 1이 나무에 둥지를 만든다. 하지만 온대 기후에서는 땅속에 둥지를 만든다. 칭클 교수가 연구한 플로리다의 위도에서는 일부 개미들만 나무에 둥지를 만든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물론 생활 조건 때문이다. 온대 기후에서 나무속은 너무 건조하거나 얼어버릴 수 있어 개미의 생활사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과 질서를 보다
개미 둥지는 라텍스, 석고나 아연, 혹은 알루미늄 등으로 주물을 뜬다. 이를 통해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과 질서”를 관찰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건 주물로 드러난 개미 둥지가 ‘조직된 구조’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자기조직화’를 한 셈이다. “진화한 것은 흙 속의 빈 공간에 불과한 개미 둥지가 아니라 둥지를 파는 개미들의 행동이라는 점을 처음부터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수직 통로들이 수평한 방들을 연결하여 여러 개의 뚜렷한 수직 시리즈를 이루었고, 종종 방들 사이도 수평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작업 과정에서의 고충도 책에 나온다. 개미의 둥지 건축을 주물로 드러내는 것과 그 안의 개미들을 채집하는 게 상충하는 것 같다. 그래서 칭클 교수는 “일부 둥지를 금속 주물로 만들고 나머지 둥지를 왁스 주물로 만들어 결합하는 것은 개체 수 조사와 건축의 목적을 모두 충족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개미 둥지를 본뜨면서 개미들을 채집하기 위해 절충하는 것이다.
개미 둥지의 모습은 정말 다양하다. △상부 밀집 △상부 드물 △다중 단위 △하부 밀집 △하부 드물 △나선형 통로 △분기형 통로 △측면 통로 등. 칭클 교수는 “둥지를 구성하는 방과 통로가 마치 서로 독립적으로 진화한 것처럼 다양한 조합으로 존재한다”라고 밝혔다.
개미 둥지를 연구하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일어났다. 개미 둥지를 모두 파내고 구덩이 안에 3톤에 가까운 모래로 다시 메우기를 매번 해야 했다. 무덤처럼 안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개미 둥지를 파는 플로리다주 숲에는 실종자가 많기 때문이다. 무덤같이 보이는 개미 둥지의 연구 장소는 보안관이 다시 파서 일일이 확인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그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모래를 제자리에 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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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과 역설 “상관관계는 인과관계 아냐”
이 책에는 과학적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첫째,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방의 크기·일개미의 나이와 반비례 상관관계라는 가설이다. “많은 미신은 상관관계가 있는 사건들이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는 데서 생겨난다.” 나이 많은 일개미가 개미 둥지 위쪽에 있는 이유는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낮기 때문이라는 추측이다. 여러 데이터가 이 가설에 부합하는 듯 보였고, 대조군과 반복 실험을 했으나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라는 점이 판명 났다. 이산화탄소의 양을 역전시켜서 실험해 보았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둘째, 미치너 역설이다. 미치너 역설로 인해 칭클 교수는 “곤충의 사회성 진화가 결과적으로 번식 성공률 감소를 의미한다면 왜 사회성을 진화시켰는지 궁금해졌다”라고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직접 실험해 보았다. 개미들 여럿이 들어갈 수 있는 큰 방 한 개와 수십 개의 방이 있는 둥지를 각각 만들었다. 하지만 단일 방이든 여러 방이든 둥지에서 유충을 사육하는 효율은 비슷했다.
칭클 교수는 나중에야 “군락이 커져도 번식 효율이 감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연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다시 말해, “유충 사육의 효율성은 유충을 돌보는 일개미와 돌봄이 필요한 유충의 비율에 달려 있었고, 이 비율은 늘 동일했다”라는 것이다. 미치너 역설이 사라지는 셈이다. 특히 채집 개미 대 유충의 비율은 1.6으로 수렴했다. 5∼10월 사이 주요 번식기 동안 채집 거미는 유충에 맞춰 인구통계학적으로 조절된 것이다. 이에 대해 칭클 교수는 “초유기체 기계의 톱니바퀴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집단의 자원 손실 최소화
자,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개미들은 왜 둥지를 만들고, 어떻게 만드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생존과 생태학적 역할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다’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토대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에서 답한다면 말이다. “개미 둥지는 가장 위험한 작업인 먹이 활동을 가장 ‘소모된’ 일개미에게 할당하여 일개미의 불가피한 죽음으로 인한 집단의 자원 손실을 최소화했다.”
일개미가 나이 듦에 따라 일생은 다음과 같이 흐른다. 유충 돌보미 일개미 → 이송 작업자 일개미 → 채집 개미. 칭클 교수는 “채집 개미 개체 수의 3∼5퍼센트가 매일 죽고 전체 채집 개미 집단은 대략 한 달마다 완전히 교체된다”라며 “군락은 먹이 활동 기간에 이러한 손실과 교체를 꾸준히 감당해야 하지만, 각 일개미는 채집 개미가 될 때까지 체내에 저장한 지방을 사용하면서 에너지 손실을 부분적으로 줄인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걸 보면, 자연은 무서우면서 동시에 위대해 보인다.
특히 개미들은 식물에 흡수되지 않은 영양소를 토양을 휘저으며 다시 끌어올린다. 이로써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생태학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일개미 각자의 역할이면서 동시에 개미라는 초유기체가 맡고 있는 ‘임무’이다. 임무라는 표현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개미 입장에서는 본능일 수 있고, 자연의 입장에서는 섭리일 수 있다. 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개미는 토양을 비옥하게 해 준다.
아울러, 개미는 깊이와 위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다. 또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그것은 개미 군락이나 초유기체로서 생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붉은열마디개미는 먹이가 부족할 때 유충을 낮은 온도에 저장한다. 그 이유는 성장의 속도를 늦춰 유충 유지하는 비용을 아껴보려는 것이다.
둥지를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는 것도 생존을 위해서다. “각각의 이사는 세심하게 조율된 이벤트, 즉 개미 발레와 같다는 사실은 이미 분명하다. 각 배역을 누가 맡았는지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안무는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개미 둥지가 고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수확개미의 지하 둥지는 한 번 건설되면 고정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리모델링된다는 것이다.”
‘개미 건축’은 아름답다. 개미 건축을 위해 희생하는 개미들은 더욱 아름다워(개미다워) 보인다.
<참고문헌>
1. 『개미 건축』(월터 R. 칭클 지음 | 강현주 옮김 | 최재천 감수 | 에코리브르 | 320쪽)
2. https://en.wikipedia.org/wiki/Ant
3. https://www.youtube.com/watch?v=7q4ubY_qkYw&list=PLtuova798Ww3p9x888CW1PfK9jKZeuUZ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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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김재호) 등록 2024.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