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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42억 년 전 생명체의 모습은?

산포로 2024. 7. 29. 09:23

[강석기의 과학카페] 42억 년 전 생명체의 모습은?

 

1958년 51세인 할랜드 우드 교수(왼쪽)의 연구실에 들어온 32살 늦깎이 대학원생 라르스 융달(가운데)은 혐기성 박테리아 무렐라 써모아세티카(오른쪽)가 이산화탄소에서 아세테이트를 만드는 대사 경로를 규명하는 연구 주제를 받았다. 두 사람은 그 뒤 30여 년 동안 협력해 대부분을 밝혔고 지금은 '우드-융달 경로'로 불린다. 아쉽게도 융달의 젊은 시절 사진을 찾지 못했다. 아이오와주립대/라르스 융달 제공

 

지난해 7월 13일 96세로 세상을 떠난 스웨덴의 생화학자 라르스 융달(Lars Ljungdahl)은 그렇게 유명한 과학자가 아니다. 매년 20명 내외의 과학자 부고를 싣는 학술지 '네이처'나 '사이언스'도 그냥 지나갔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스승(지도교수) 할랜드 우드(Harland Wood)의 이름과 함께 묶여 생화학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최근 들어 인용되는 빈도가 늘고 있다. 바로 두 사람의 성으로 불리는 '우드-융달 경로(Wood-Ljungdahl pathway. 줄여서 WLP)'다.


1926년생인 융달은 화학공학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1947년 스톡홀름양조에 취직해 10여 년을 다니다 1958년 32살의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해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생화학과 우드 교수 연구실에서 한 미생물의 특이한 발효 메커니즘 규명을 학위 주제로 받았다.

 

주인공은 학명이 무렐라 써모아세티카(Moorella thermoacetica. 이하 무렐라)인 호열성(40~65℃) 박테리아로 당 같은 유기분자를 대사해 아세테이트(아세트산의 짝염기)를 내놓는다. 


당이나 에탄올을 산화시켜 아세트산을 만드는 아세트산세균(초산균)은 여러 종류가 알려져 있고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했다. 초산균 덕분에 식초를 만들지만 양조할 때 초산균이 과잉 증식하면 술을 망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무렐라는 초산균이 아니라 '아세토젠(acetogen)'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아세트산(아세테이트)을 만드는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초산균은 발효에 산소를 쓰지만(산화) 아세토젠은 산소가 희박한 혐기성 조건에서 사는 미생물로, 산소를 쓰지 않는 환원 발효로 아세테이트를 만든다.


● 30여 년 동안 스승과 제자 협업


1933년 말똥에서 분리한 장내미생물 무렐라는 포도당 한 분자를 아세트산 세 분자로 바꾼다. 분자식을 보면 딱 떨어지지만(C6H12O6 → 3CH3COOH) 분석 결과 대사 과정이 다소 복잡해 먼저 아세트산 두 분자와 이산화탄소 두 분자로 바뀐 뒤 이산화탄소 두 분자에서 아세트산 한 분자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융달은 이산화탄소에서 아세트산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각 단계를 명확히 밝히는 과제를 맡았다.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해 융달이 학위를 받고 조지아대 생화학과 교수로 간 뒤에도 우드 교수와 일을 나눠 같이 진행했고 1991년 우드 교수가 8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이 넘게 이어졌다. 두 사람 모두 반평생을 바친 연구였던 셈이다. 


연구자들은 여러 기법으로 분자 메커니즘을 추적했고 마침내 무렐라가 이산화탄소와 수소만으로 아세틸CoA(코에이로 발음)를 만들고 이를 써서 여러 생체분자를 합성하거나 에너지 분자인 ATP가 만들고 아세테이트를 내놓는 경로를 밝혀냈다.

 

무렐라는 당 같은 유기물이 있으면 이를 써서 쉽게 생체분자와 에너지를 얻지만(종속영양) 없어도 무기물(이산화탄소와 수소)을 이용해 살아갈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새로운 독립영양 메커니즘인 '환원 아세틸CoA 경로'를 밝힌 것인데 이전까지는 광합성의 캘빈회로가 유일했다. 

 

할랜드 우드와 라르스 융달 그리고 두 사람의 제자들이 밝힌 환원성 아세틸CoA 경로, 우드-융달 경로와 각 단계에 관여하는 효소를 보여주는 도식이다. 이산화탄소(CO2) 두 분자가 아세틸기(CH3CO-)를 이루기 전까지 바뀌는 구조를 각각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나타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세틸기(CoA에 붙은 상태)는 세포의 생체분자 재료(Cell Carbon)로 바뀌거나 에너지 분자(ATP)를 만드는데 쓰인다(이때 아세테이트를 내놓는다). 환경미생물학 제공

 

융달은 1986년 저술한 한 리뷰논문에서 위의 메커니즘을 지도교수의 이름을 따 '우드 아세틸CoA 경로'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 뒤 관련 학계는 이 이름에서 아세틸CoA를 빼고 대신 융달을 넣어 '우드-융달 경로'라고 불렀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에 대해 융달은 2009년 발표한 한 기고문에서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겸손해했다.


융달은 "아세테이트 합성 경로를 밝히던 처음 15~20년 동안 우드와 나(융달)는 심한 외로움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 뒤 우드-융달 경로를 지닌 아세토젠이 속속 발견돼 100여 종에 이르면서 점차 관심을 끌었고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융달은 "지구에서 아세토젠이 내놓는 아세테이트가 1년에 10억 톤에 이른다"며 추정했다. 이산화탄소 수억 톤을 고정하는 셈으로 광합성 다음으로 많은 양이다. 한편 아세토젠이 '배설하는' 아세테이트를 먹이로 삼는 수많은 생명체가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무렐라가 내놓는 아세테이트도 숙주(말)는 물론 다른 장내미생물의 영양분이 된다.


2000년대 들어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해결책의 하나로 아세토젠이 떠올랐다. 많은 과학자가 아세토젠을 배양해 이산화탄소나 일산화탄소를 없애면서 동시에 유기물(아세테이트나 에탄올)을 만드는 세포공장 연구에 뛰어들었다.

 

우드-융달 경로는 독립영양 메커니즘이므로 원리적으로 가능하지만 상용화에 성공하려면 효율이 높은 미생물을 찾고 대사 경로를 조정해 최적화하는(합성생물학) 등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2023년 오스트리아 보쿠대 환경생명공학연구소(IFA-Tulln)와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가 발표한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8가지 바이오기술' 보고서를 보면 연료·소재 부문에서 과학계가 집중할 것으로 예상하는 분야로 우드-융달 경로를 꼽았다. 놀랍게도 지난 2018년 아세토젠 세포공장의 첫 상용 설비가 가동에 들어갔다. (과학카페 '탄소중립 앞당길 미생물 공장' 참조(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3202))


● 가장 오래된 탄소고정 회로


아세토젠이라는 동전의 또 다른 놀라운 면은 우드-융달 경로가 생명체의 진화 과정에서 아마도 가장 오래된 탄소고정 회로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캘빈회로(광합성)와 우드-융달 경로 발견 이후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회로가 4가지 더 밝혀졌는데 이 가운데 우드-융달 경로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생명체가 만든 유기물이 없는 초기 지구에서 우드-융달 경로를 진화시킨 생명체가 등장했다는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여럿 있다. 먼저 아세토젠은 산소가 희박한 곳에 사는(혐기성) 미생물로 바로 초기 지구의 환경이다. 흥미롭게도 열수분출구에서 발견되는 니켈과 철의 천연 합금인 광물인 아와루아이트(awaruite. Ni3Fe) 표면에서 수소와 이산화탄소가 아세테이트로 바뀌는 반응이 일어난다. 아마도 우드-융달 경로는 초기 생명체가 자연에서 일어나는 이런 과정을 가져와 좀 더 효율적으로 진화시킨 결과일 것이다. 


우드-융달 경로가 6가지 가운데 유일하게 탄소를 고정하면서 동시에 에너지를 만든다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생명 초기에는 효율이 낮더라도 동시에 여러 기능을 하는 시스템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특화된 기능을 효율이 높게 수행하는 시스템이 진화한다. 유전정보를 저장하면서도 촉매 활성이 있는 RNA가 먼저 나온 뒤 각각에 특화된 DNA와 단백질이 진화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우드-융달 경로가 원핵생물의 두 영역인 박테리아(세균)와 아르케아(고세균) 모두에서 발견된다는 것도 강력한 증거다. 반면 나머지 5가지 이산화탄소 고정 회로 가운데 3가지는 박테리아에만 존재하고(예를 들어 캘빈회로) 2가지는 아르케아에만 존재한다. 5가지는 원핵생물이 박테리아와 아르케아로 나뉜 뒤에 각각의 계열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우드-융달 경로는 두 영역으로 나뉘기 전 공통조상에서 이미 지니고 있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 루카는 꽤 복잡한 생명체


지난 12일 학술지 '네이처 생태학 & 진화' 사이트에는 '오늘날(또는 최근) 모든 생물의 공통조상(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줄여서 LUCA(루카로 발음))'이 약 42억 년 전 살았던 아세토젠이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이 공개됐다. 영국 브리스톨대가 주축인 다국적 공동연구자들은 박테리아 350종과 아르케아 350종의 게놈 정보를 바탕으로 유전자의 진화 과정을 추측하는 기법으로 이들의 공통조상, 루카를 복원했다.

 

최근 연구자들은 현존하는 아르케아 350종과 박테리아 350종의 게놈 정보를 바탕으로 여러 기법을 써서 모든 생물의 공통조상,  LUCA(루카)가 대략 42억 년 전 살았던 오늘날 원핵생물 수준의 복잡성을 지닌 생명체라고 추측했다. 루카는 막대 모양의 세포로 우드-융달 경로로 이산화탄소와 수소에서 아세틸CoA를 만들어 생체분자의 재료로 쓰거나 에너지를 얻는다. 루카는 단백질 공장인 리보솜(ribosome)이 있고 바이러스(파지)의 침입에 대응하는 초기 캐스(Cas) 기반 면역계도 갖췄을 것으로 보인다. 네이처 생태학 & 진화 제공

 

그 결과 루카는 약 42억 년 살았고 게놈 크기가 약 270만 염기이고 단백질 지정 유전자는 약 2600개를 지녔을 것으로 추측됐다. 이는 현존하는 박테리아나 아르케아와 비슷한 수준으로 루카가 이미 꽤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한 상태였다는 뜻이다. 심지어 면역계인 크리스퍼-캐스의 핵심 유전자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바이러스와 '붉은 여왕의 경주'를 벌이고 있었다는 얘기다.


참고로 아르케아를 발견한 미생물학자 칼 우즈는 1977년 발표한 논문에서 루카가 오늘날 원핵생물보다는 훨씬 단순한 생명체인 고세포(progenote) 형태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세포인 루카가 두 계열로 갈라진 뒤 각자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해 박테리아와 아르케아가 됐다는 시나리오다. 이번 논문이 제시하는 루카가 맞다면 우즈의 가설이 47년 만에 폐기되는 셈이다. 


루카는 우드-융달 경로에 필요한 유전자들을 지니고 있었지만 캘빈회로나 메탄생성 회로 등 다른 이산화탄소 고정 메커니즘에 필요한 유전자는 갖추지 못했다. 이들은 이산화탄소와 함께 수소가 있는 조건에서 살았을 것이므로 서식지로 해저가 가장 유력하다. 해저의 광물이 변성되는 과정인 사문석화작용에서 발생하는 수소가 전자를 공급해 이산화탄소를 환원시켜 아세틸CoA를 만든다. 


오늘날 생명체 대다수의 게놈에는 우드-융달 경로를 이루는 유전자 세트가 없다. 진화 과정에서 생체분자 재료를 만들고 에너지를 얻는 여러 방법이 발명되면서 둘 다 가능하지만 효율이 떨어지는 우드-융달 경로 유전자가 사라진 것이다. 


한편 42억 년 전 루카가 유일한 생명체일 가능성은 작다. 아세토젠인 루카가 내놓는 아세테이트를 먹이로 삼는 생명체가 존재했을 것이고 이들과 관련된 또 다른 생명체가 엮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루카를 뺀 나머지 생물들은 그 뒤 모두 멸종해 루카의 계보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유전자 가운데 일부가 수평이동으로 루카의 후손에게 넘어가 흔적을 남겼을 가능성은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지만 호모사피엔스의 게놈에 흔적을 남긴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루카는 당시 유일한 생명체가 아니라 여러 생명체(이 가운데는 아세테이트를 먹이로 삼는 종류도 있었을 것이다)로 이뤄진 생태계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루카 계열에서 모든 박테리아의 공통조상(LBCA)과 모든 아르케아의 공통조상(LACA)이 나왔고 그 뒤 아르케아에 포획된 박테리아가 세포내공생으로 미토콘드리아가 되면서 모든 진핵생물의 공통조상(LECA)이 등장했다(맨 위가 현재). 루카와 살았던 다른 생명체의 계열은 모두 멸종했지만 루카 계열에 유전자를 남겼을 수 있다(수평이동으로). 네이처 생태학 & 진화 제공

 

융달 교수는 2009년 기고문에서 "최근 (제자인) 랙스달과 다스의 노력으로 무렐라의 완전한 게놈 서열이 밝혀졌다"며 "무렐라의 DNA 서열을 아는 건 내 오랜 소망이었다"고 썼다. 2008년 학술지 '환경미생물학'에 발표된 논문으로 제자들이 스승인 융달도 저자로 이름을 올려줬다.

 

무렐라 써모아세티쿰의 게놈 크기는 약 260만 염기이고 단백질 지정 유전자는 약 2500개로 밝혀졌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게놈 크기와 유전자 수 모두 이번에 제안된 루카의 범위에 들어간다. 참고로 대장균은 각각 460만 염기와 4200개이고 상용화된 설비에 쓰이는 아세토젠인 클로스트리디움 오토에타노게눔은 각각 450만 염기와 4100개다.


우드와 융달은 당시 알려진 유일한 아세토젠이라 무렐라로 실험을 한 것이지만 두 사람과 이 박테리아의 인연이 42억 년 전에 이미 맺어졌다고 느끼는 건 너무나 비과학적인 생각일까.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동아사이언스(dongascience.com) 2024.07.24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