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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불안감과 두근거림 어느쪽이 먼저일까

산포로 2023. 3. 9. 09:17

[강석기의 과학카페] 불안감과 두근거림 어느쪽이 먼저일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어 가슴이 왜 이렇게 두근거리지?’

 

카페인에 민감한 편이라 커피를 아침, 점심 두 잔만 마시는데 그날은 오후 서너 시에 한 잔 더 마셨다. 일이 잘 안 돼 자료를 들고 카페에 갔는데, 커피 향에 끌려 충동적으로 핸드드립커피를 시킨 것이다. 밤에 잠을 생각해서 반만 마실 생각이었지만 자료를 보며 홀짝거리다 보니 잔 가득 담긴 진한 커피가 바닥났다.

 

그런데 문득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지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카페인 과다 섭취가 심박수나 혈압을 올린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카페인 함량이 높은 핸드드립커피를 다 마셔버렸으니 이미 몸에 들어온 카페인이 대사되거나 배출될 때까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인지 두근거림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이러다 심장에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닌가?’라는 걱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무튼 이날 경험으로 그 뒤 하루 커피 두 잔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카페인이 심장을 빨리 뛰게 한다는 지식이 없었더라도 이날의 불안감이 이렇게 기억에 남을 정도였을까. 어쩌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더라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과거 신경과학 주류 이론에 따르면 그럴 것이다. 불안 등 다양한 감정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외부 자극을 뇌가 해석한 결과이고 신경계와 내분비계를 통해 몸이 그에 맞는 생리 반응을 할 수 있게 정보를 전달하는 ‘하향식 체계’이기 때문이다. 불안을 느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상승해 교감신경을 자극하고 그 결과 심장이 빨리 뛴다는 얘기다. 

 

따라서 카페인의 작용으로 심장이 빨리 뛴 게 불안감의 원인은 아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고 카페인의 부작용과 연결 짓는 순간 불안한 감정이 생기고 그 결과 교감신경 활성이 더 커져 두근거림이 심해졌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그런데 오늘날 감정 이론은 감정의 형성과 세기에 몸도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 외부 자극뿐 아니라 몸에서 오는 ‘상향식’ 생리 정보까지 통합해 뇌가 해석한 결과가 감정이다.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의식적’ 감정은 전체 감정의 일부일 뿐이다.

 

흥미롭게도 공황장애나 광장공포증 등의 불안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승모판막탈출증이나 발작성 빈맥(박동수가 정상 범위 상한인 분당 100회를 넘어선 상태)을 지닌 확률이 평균보다 높다. 심장 구조나 기능 이상이 불안감을 증폭시켜 병적 증상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몸의 생리 정보가 특정 감정을 일으키거나 강화한다는 걸 직접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한 상태다.

 

예를 들어 생쥐에게 카페인을 투여한 뒤 행동 실험을 해서 불안감을 일으키거나 강화했다는 결과를 얻었더라도 이게 꼭 심박수 증가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카페인은 아드레날린 호르몬 분비 촉진 등 여러 경로로 불안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셈이다.

 

1일자 학술지 ‘네이처’ 사이트에는 다른 변수는 건드리지 않고 심박수만 높여도 불안감을 높일 수 있음을 보인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의 논문이 실렸다. 연구자들은 광유전자 기법을 도입했다. 빨간빛을 받으면 통로가 열리는 통로단백질(ChRmine) 유전자를 담은 바이러스를 생쥐에 주입했다. 그 결과 녀석들의 심근세포의 막에는 이 통로단백질이 박혀있다.

 

연구자들은 생쥐에게 빨간빛을 내는 마이크로LED가 달린 조끼를 입혔다. 스위치를 켜면 빨간빛의 일부가 피부를 투과해 심장까지 도달해 통로단백질이 열려 세포 바깥의 양이온이 안으로 들어오며 신호가 발생한다. 그 결과 심박수가 평소(분당 660회)보다 36%나 빨라져 분당 900회에 이른다. 참고로 덩치가 작은 생쥐는 심박수가 사람의 10배에 이른다.

 

과거 주류 신경과학 이론에 따르면 뇌는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세계의 정보를 받고 적절한 감정을 생성해 대응한다(위). 그러나 오늘날 이론에 따르면 이와 함께 몸과 주고받는 정보도 감정 생성과 강도에 영향을 미친다(아래). ’인지과학 경향 제공

 

● 심박수 높아지자 걱정 많아져

 

이처럼 심박수가 크게 올라갔음에도 생쥐의 평소 행동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불안감의 정도가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차이가 뚜렷했다. 예를 들어 가로는 굴처럼 위가 막혀 있고 세로는 위가 뚫려 있는 특수 십자형(+) 미로에 두면 비교군은 탐색 시간이 비슷한데 심근세포막에 통로단백질을 지닌 생쥐는 조끼에서 빨간빛이 나올 때 위가 뚫린 길을 피했다.

 

열린 마당(정사각형) 시험에서도 비교군은 아무 데나 돌아다녔지만 통로단백질 생쥐는 중앙은 피하고 벽을 따라다녔다. 심박수 증가가 불안감을 일으켜 탐색 행동이 억제된 것이다.

 

불안하면 걱정도 많아지기 마련이라 선택을 앞두고 위험을 과대평가하게 된다. 레버를 누르면 물을 한 모금 마실 수 있되 10%의 확률로 약한 감전 쇼크를 일으키는 장치로 생쥐를 훈련한다. 목마른 생쥐는 보통 이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레버를 눌러 물을 마신다. 그런데 빨간빛으로 심박수가 높아진 생쥐는 레버 앞에서 망설이다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역시 불안이 크다는 증거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들은 빛으로 통로단백질의 활성을 조절하는 광유전자 기법을 써서 심박수 증가가 불안감을 높인다는 가설을 입증했다. 심근세포막에 박혀있는 단백질(ChRmine)은 조끼에 달린 마이크로LED에의 빨간빛에 반응해 통로가 열리며 활성화돼 심박수가 높아지며 생쥐가 불안 행동을 보인다(왼쪽). 한편 뇌섬엽 세포막에 있는 단백질(iC++)은 파란빛에 반응해 통로가 열리며 빈맥으로 유발된 불안을 차단한다(오른쪽). 네이쳐 제공

 

● 뇌섬엽이 허브

 

그렇다면 심박수 증가 정보가 뇌의 어디로 전달돼 불안이라는 감정을 일으켰을까. 빨간빛으로 심박수가 늘어났을 때 뇌의 활동을 조사한 결과 뇌간과 뇌섬엽의 활성이 높아졌음을 확인했다. 뇌간은 뇌와 몸이 감정에 관련된 정보를 교환하는 중계기지이고 뇌섬엽은 이 정보를 통합하는 허브라는 기존 연구 결과를 따르는 결과다.

 

연구자들은 심근세포에 통로단백질(ChRmine)이 있는 생쥐의 뇌섬엽 세포막에 파란빛을 받으면 통로가 열리는 통로단백질(iC++)이 있게 추가로 조작한 뒤 뇌섬엽에 광섬유 캐뉼라(관)을 꽂았다. 파란빛 레이저를 쏘면 통로단백질이 열리며 세포 바깥의 음이온이 안으로 들어오며 억제 신호가 발생한다. 

 

조끼에서 빨간빛이 나와 심박수가 올라가면 불안감이 커져 앞서 실험에서 같은 결과를 보였다. 그런데 파란빛 레이저를 쏘아 뇌섬엽의 활동을 억제하자 불안 행동이 크게 줄어들었다. 예상대로 심박수라는 몸의 생리 정보가 뇌섬엽으로 전달돼 불안이라는 감정을 일으키는 걸 입증한 결과다.

 

흔히 감정은 이성과 대비되지만, 오늘날 감정 이론에 따르면 어떤 감정이 생기거나 강화되는 건 여러 경로에서 들어온 관련 정보의 양에 따라 결정되는 합리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들어오는 정보의 양을 줄인다면 특정 감정의 생성을 막거나 세기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불안 같은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명상이 효과가 큰 것도 이런 작용의 결과 아닐까. 바른 자세로 안정된 호흡을 하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돼 심박수가 떨어지고 이 정보가 뇌섬엽에 전해져 불안 요인이 적어졌다고 판단해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된다는 말이다. 얼마 전 기간이 만료됐음에도 별로 이용하지 않아 연장하지 않았던 명상 앱을 다시 구독해야겠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동아사이언스(dongascience.com)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2023.03.08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