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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흡연 피해 국가가 막을 때다

산포로 2009. 1. 30. 08:42

[사이언스 플라자] 간접흡연 피해 국가가 막을 때다

영하의 추운 날씨와 경제 한파로 모두의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2009년 겨울, 서울 변두리 작은 감자탕 집에 건장한 남자 4명이 들이닥쳤다. 주인 아주머니 인심처럼 푸짐한 감자탕 한 냄비와 소주 몇 병을 시키고 주거니 받거니 하기를 잠시…. 이들 중 몇 사람이 무려 4000여 종의 화학물질이 포함된 연기를 식당 전체에 뿌려대기 시작했다.

연기 속에는 시체 방부제인 포름알데히드, 폴로니엄 같은 방사성 물질, 카드뮴 니켈 등 중금속과 독극물인 청산가리…, 그리고 인체에 치명적인 69가지 발암물질이 들어 있었다.

당시 식당에는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친 감자탕 마니아 K군 가족과 폐렴과 천식으로 한 달 동안 고생하다 병원에서 막 퇴원한 할아버지 L씨, 그리고 남편과 시장에 나왔다가 갑자기 감자탕이 먹고 싶어진 임신부 P씨 등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인을 포함한 손님 중 누구도 독가스 살포범들을 제압하거나, 경찰을 부르거나, 식당문을 박차고 나가지 못하고 눈치만 보며 감자탕 국물만 들이켜고 있었다.

대한민국 어느 식당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간접흡연` 풍경이다. 해마다 국내에서 3만5000명, 즉 매일 꼬박꼬박 100명이 넘는 이웃들이 담배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10년에 한두 명 죽을까 말까 한 미국산 광우병 공포 때문에 시청 앞을 촛불로 뒤덮었던 대한민국이 이런 끔찍한 사실 앞에 침묵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가 정신건강에 좋다거나,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데…라며 두 눈 치켜뜨는 분들을 일일이 설득할 여력은 없다.

하지만 간접흡연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무고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 행위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간접흡연으로 인해 폐암으로 사망하는 우리나라 어머님과 누님들 수가 7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의 억울한 죽음은 누구 탓인가? 일차적으로는 좁은 방안이나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워댄 남편들과 몰지각한 직장 상사들 탓이지만, 더 근본적인 책임은 국가에 있다.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은 국가의 기본 의무이기 때문이다.

사실 간접흡연 해독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간접흡연의 해독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들을 발 빠르게 취하고 있다. 미국 여러 주, 유럽, 호주, 홍콩 등 앞서가는 나라들에서는 식당은 물론이고 술집까지 전면 금연을 실시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전통적인 동네 어귀 선술집인 퍼브에서 담배를 즐기던 아일랜드나 우리나라 사람들과 성정이 비슷한 이탈리아는 전면 금연법 시행 초기에 많은 어려움에 부딪쳤다. 흡연권도 인정해 달라는 주장과 매상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 술집 주인들이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금연법 실시 후에 발표되는 각종 연구들은 이러한 염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식당은 물론이고 술집조차도 금연법 시행 후 총매출이 전혀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식당 종업원 건강이 현저하게 개선되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금연법은 음식업 종사자들과 손님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윈윈 정책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래도 술집까지 금연시키는 것은 술 마시면 으레 담배를 찾는 국내 주당들 정서상 무리이니 우선 식당 금연을 먼저 실시하고 여론이 성숙한 다음으로 미루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사안의 중요성으로 볼 때 국민이 간접흡연으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일은 여론이 성숙될 때까지 기다릴 일이 아니다.

선진국 예에서도 전 국민을 설득한 후에 금연법을 시행한 나라는 없었다. 요즘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건강이 더 소중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소띠 해 기축년, 식당에선 밥만 먹고 싶은 비흡연자들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정유석 단국의대 의료윤리학교실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2009.01.29 16:44:5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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