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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에 의사·과학기술자 뺏길라…한국인 취업비자 문턱 낮추는 법안에 '화들짝'

산포로 2024. 10. 23. 11:17

美에 의사·과학기술자 뺏길라…한국인 취업비자 문턱 낮추는 법안에 '화들짝'

 

비자 취득 과정을 표현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의사, 엔지니어,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전문 기술을 보유한 한국인의 미국 비자 취득 문을 넓히는 일명 '전문직 취업비자 법안'이 미국 의회에서 추가로 발의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것으로 여겨지는 의학, 과학기술 분야 인재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자 취득이 덜 까다로워지면서 미국행을 결심하는 최상위권 인재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최근 수 년간 과학기술 연구 인력의 해외유출 현상이 해마다 심화되는 가운데 과학계가 이번 법안 통과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호주 국적 전문인력 대상 'E-3' 비자 확대 방안 법안 발의

 

22일 외신 등에 따르면 이달 초 톰 수오지 미국 연방 하원의원은 호주 국적의 전문기술을 보유한 인력을 위해 마련된 'E-3' 비자 쿼터에 한국을 추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E-3 비자의 쿼터는 매년 1만500개지만 매년 쿼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이번 법안은 E-3 비자 쿼터에 한국을 추가하는 내용을 담았다. 

 

비자 취득은 미국에서 일자리를 얻고자 하는 한국 인재들의 최대 난관으로 여겨진다. 현재 전문 인력을 위한 미국 취업 비자로는 H-1B 비자가 있다. 학사 이상 학위를 가진 엔지니어나 컴퓨터 프로그래머, 회계사, 의사, 대학교수 등이 발급대상이며 최대 6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비자 쿼터는 8만 5000명이지만 매년 H-1B 비자 신청자가 30만 명을 넘는 만큼 취득이 쉽지 않다. 국내 과학기술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자 취득과 관련된 질문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이번 법안 발의의 배경에는 미국 과학기술 산업계에서 한국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앞서 미국 연방 상원과 하원에는 전문 기술 등을 보유한 한국 국적자를 대상으로 연간 최대 1만5000개의 전문 취업비자 'E-4'를 발급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은 10년 넘게 번번이 무산됐는데 이번에 이 방안을 우회하는 새로운 비자 취득 방안이 제시된 것이다.

 

수오지 의원은 "한국은 대미 투자액이 가장 많은 국가이며 원칙적으로는 한국 동반자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면서도 "다만 이른 시일에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차선책으로 E-3 비자에 한국을 추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라고 설명했다.

 

● 외국 인재 유입에 주효한 비자 확대…불안한 한국 과기계

 

국내 과학기술계는 이번 법안이 국내 이공계 두뇌 유출을 심화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실제 반도체 산업계에서도 앞서 H-1B 비자 확대가 추진됐을 당시 국내인력의 해외 이직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을 우려했다.

 

비자 제도의 확대는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는 데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여겨진다. 앞서 외국인 전문 인력을 대상으로 한 고도 인재 비자를 도입한 일본에서는 2022년 1만 8000명이던 전문직 외국인이 지난해 2만390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국내 이공계 두뇌 유출은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연도별 이공계 학생 유출입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유출된 이공계 인재는 총 33만9275명으로 이 중 석·박사는 9만6000여명이다.

 

과학기술원 소속 한 교수는 "양질의 인재들이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자리를 잡는 현상이 심화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출연연구기관 소속 연구자는 "지금도 연구원 채용을 위한 인력풀이 부족한 상황으로 인재들의 미국행과 직결되는 비자 확대 법안에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비자 확대 움직임은 한국에서도 활발하다. 법무부에 따르면 정부는 인공지능(AI), 양자기술, 우주항공 등 첨단 분야의 전문 인재를 대상으로하는 '톱 티어' 비자를 내년 1분기 신설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5년 간 전문 기술인력 10만명 이상을 유치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한국의 해외 인재 영입을 위한 비자 제도는 최근 허점이 노출되기도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항공기 및 부품 제조 분야 숙련 기술인을 위한 비자 'E-7-3'은 범죄경력증명서와 건강상태 확인서 등 신원 검증에 필요한 핵심 서류를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사이언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2024.10.22 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