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위생이 면역체계를 파괴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紙, 위생제일주의와 질병의 관계 지적
“인간의 면역 시스템이 각종 외부환경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위생제일주의를 버려라.”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4일 “인간의 면역체계가 너무나 예민해져 그로 인해 생기는 질병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불치병은 대부분 면역체계의 문제점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예를 들자면 우선 천식(asthma)이 있다. 습진(eczema)과 같은 알레르기성 염증반응과 고초열(hay fever)을 동반하는 천식은 지난 20~30년 동안 세계적으로 급속히 증가해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
또한 음식 알레르기로 고통을 호소하는 어린이들도 급속히 늘고 있다. 특히 가정에서 먹는 음식과 다를 경우 배탈, 복통, 그리고 설사와 같은 예민한 반응이 일어나 부모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에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소한 문제들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한 이면에는 면역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misfiring) 때문이라는 주장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10년간 알레르기나 면역체계 부족에서 오는 질병에 호소하는 환자들이 최소한 2배 증가했으며 일부 질병들은 4~5배가 증가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구의 반이 적어도 한 종류 이상의 알레르기에 시달리고 있다.
“너무 청결하게 살지 말라”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다. 그러나 가정생활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에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즉 청결을 제일로 삼고 있는 ‘위생제일주의(hygienic hypothesis)’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지나치기 때문이다.
가정 내에서 세균이라면 씨를 말려버려 세균이 전혀 없는 곳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면역기능이 약화됐다는 주장이다. 공기오염을 피하기 위해 설치한 공기청정기, 에어컨, 난방장치가 원인이다. 또한 어린이든 성인이든 간에 앉아서 생활하는 양식(sedentary lifestyle)도 큰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WP는 지적했다.
미국 아리조나 대학에서 알레르기를 가르치고 있는 페르난도 마티네즈(Fernando Martinez) 교수는 “지난 50년간 인류의 생활양식을 완전히 바뀌었다. 새로운 제품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있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서로 함께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이런 다양한 환경에 접해야 하기 때문에 면역체계에 보다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면역능력이 옛날과 다르게 나타나고 있고, 이는 우리가 당연히 지불해야 할 대가”라고 지적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최근 무해하거나 정도가 약한 박테리아 등을 사용해 면역능력을 키우기 위한 실험에 들어갔다. 또한 대장염이나 관련된 질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무해한 기생충을 삼키게 한 다음 인체의 면역기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실험도 했다.
기생충은 면역시스템에 방향감각을 제시
아이오와 대학의 로버트 서머스(Robert Summers) 교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병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몸 속에서 기생충이 완전히 없어지면 대장염과 같은 질병이 새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저 흔한 일이 돼버린다는 것이죠. 기생충의 존재는 인간의 면역체계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하는 데 중요한 상징적인 효과를 안겨다 줍니다.” 서머스 박사는 편충을 갖고 실험을 했다.
생활양식의 급격한 변화로 면역체계가 혼란에 빠져 있다. 다시 말해서 무엇을 상대로 싸워야 할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꽃가루와 땅콩은 인체에 해를 가하지 않는 물질이다. 그러나 꽃가루나 땅콩에 접하면 인체가 너무나 과도하게 반응한다.
이뿐만 아니다. 자기면역질환(autoimmune diseases)이 있다. 이 또한 인체의 방어체계가 엉뚱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난창(lupus), 다발성경화증(multiple sclerosis), 당뇨(Type 1 diabetes), 그리고 염증성장질환(inflammatory bowel disease)이 이런 경우로 면역체계가 적을 구분하지 못해 인간의 신경이나 췌장, 또는 소화기관을 공격해서 생기는 병이다.
이제 이러한 면역체계의 오류로 인해 생기는 질병에 따른 환자가 급증하고 있어 세균으로 감염되는 세균성질환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심지어 21세기의 역병은 바로 면역체계의 이상에서 비롯된다는 목소리도 일고 있다.
21세기의 역병은 면역체계의 오류에서 나와
WP는 무엇보다 무균(無菌)을 가장 좋은 위생으로 생각하는 생활환경에 경종을 가하고 있다. 갓난 어린이가 시골 농장에서 각종 환경에 노출되면서 자라나는 경우가 있다. 동물들과 같이 지내고, 풀에서 놀고, 그리고 농장에서 나오는 우유를 마시면서 클 경우, 그 어린이는 면역체계와 관련해 전혀 걱정할 문제가 없다.
연구가들은 완전히 무균상태의 실험실에서 쥐를 키웠다. 그 결과, 이 쥐의 면역체계가 야생에서 생활하는 쥐보다 너무나 날카로워진 것을 발견했다. 야생의 쥐는 항상 감염되기도 하고, 세균이나 기생충과 더불어 살아간다. 그러나 실험실의 쥐는 공격의 대상이 없기 때문에 적을 찾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듀크 대학의 윌리엄 파커 교수는 이러한 예민한 면역체계를 두고 “이것이야 말로 위생제일주의가 나쁘다는 결정적인 증거(smoking gun)”이라고 꼬집었다. 위생제일주의가 면역체계를 흔들어 놓고 있다는 이야기다.
서머스 교수에 의하면 불치병으로 알려진 다발성경화증 환자에게 미생물에 가까운 기생충을 먹도록 했더니 상당히 진전을 봤다. 그리고 만성 대장염에서 해방된 환자도 1백 명이 넘었다고 한다.
예민해진 면역체계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자연을 비롯해, 세균, 풀, 흙 등과 같이해야 하고 심지어 몸 속의 기생충들과 조차도 어울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너무 ‘위생, 위생’ 하는 위생제일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좀 불결하게도 살 필요가 있다.
김형근 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0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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