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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 로봇’이 자손을 낳다

산포로 2021. 12. 6. 10:55

‘생체 로봇’이 자손을 낳다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번식을 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번식 방법도 핵분열, 발아, 유성생식, 처녀생식, 자웅동체성, 포자 형성 등의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번식 방법에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성장한 다음에 자기 복제를 진행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미국 버몬트대학, 터프츠대학, 하버드대학의 과학자들은 이때까지 전혀 관찰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생물학적 번식을 발견했다. 외부 환경에서 재료를 조립해 자신의 후손을 생성하는 비성장 기반의 자기복제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연구진이 ‘운동학적 자기복제(kinematic self-replication)’라고 명명한 이 번식법은 화학 분야에서 무생물 분자가 환경에서 발견되는 성분으로 자신의 복제물을 만드는 방법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전체 세포나 유기체의 규모에서 관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식물이나 동물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번식을 한 주인공은 바로 ‘제노봇’이다. 살아 있는 로봇으로 알려진 제노봇은 개구리의 배아에서 수천 개의 세포를 취해 약 1㎜ 크기로 조립하여 만든 합성 생명체다.

개구리의 세포 중에서도 피부세포와 심장세포를 수정해 만들어진 것. 피부세포는 단단한 지지대 역할을 하고, 심장세포는 수축과 이완을 하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작은 모터 역할을 한다.

때문에 이 로봇들은 직선으로 이동하거나 원을 그리면서 이동하는 게 가능하다. 또한 소화 시스템이나 뉴런이 없는 제노봇은 음식이나 영양분 없이 약 2주 동안 생존할 수 있으며, 심지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도 지녔다.

슈퍼컴퓨터의 진화 알고리즘에 의해 설계된 제노봇은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생명의 형태라고 보면 된다.

팩맨 모양의 개체는 4세대까지 복제

그런데 연구진은 개구리 배아의 느슨한 세포가 들어 있는 페트리 접시에서 헤엄치는 제노봇의 행동을 관찰하던 중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와인의 코르크 따개 모양으로 접시 안에서 움직이며 다른 느슨한 세포와 충돌하던 제노봇이 그것들을 부수어 덩어리를 만들었던 것.

세포는 끈적거리므로 그 덩어리가 충분히 커지게 되면 5일 후에 움직이는 새로운 제노봇 세포 군집이 형성되었다. 즉, 다른 세포를 이용해 자기복제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복제에는 문제가 있었다. 한 세대의 제노봇이 한 번 복제해 낳은 후손은 다시 자신의 후손을 증식시킬 수 없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연구진은 인공지능(AI)의 진화 알고리즘을 이용해 어떤 모양을 한 제노봇이 운동학적 자기복제에 더 효과적일 수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삼각형, 사각형, 피라미드형, 불가사리형 등 수십억 개의 신체 형태를 시뮬레이션한 끝에 연구진이 찾아낸 것은 바로 고전 비디오게임의 캐릭터 중 하나인 팩맨이었다.

 

팩맨처럼 알파벳 ‘C’ 모양을 한 제노봇이 복제해서 낳은 후손들은 4세대까지 자기복제를 진행한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11월 29일 자에 발표됐다.

제노봇의 미래 응용 분야는 다양하다. 해양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있는 미세 플라스틱을 정화하거나 독성물질을 찾아 분해할 수도 있으며, 환자 신체의 특정 위치에 표적 약물을 전달하거나 건강에 해로운 조직과 장기를 대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제노봇이 스스로 새로운 세대를 복제할 수 있게 되면 더 많은 자율성과 더 큰 규모로 그런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생명의 기원과 운동학적 자기복제

이번 연구의 공동 저자인 버몬트대학의 조시 봉가드(Josh Bongard) 교수는 “분자의 운동학적 자기복제는 지구 생명체가 시작될 때 분명히 중요했다. 그러나 제노봇에서 볼 수 있는 운동학적 자기복제가 생명의 기원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운동학적 자기복제가 현존하는 세포 및 생물 형태에서는 관찰되지 않았지만, 생명의 기원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컴퓨터과학자 토마스 S. 레이는 1990년에 ‘티에라’라는 80바이트 크기의 자기복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64킬로바이트 크기의 한정된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후손을 낳고 사라지기를 거듭하던 이 인공생명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복제와 돌연변이 과정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혀 다른 인공생명체가 탄생한 것. 즉, 스스로는 복제 기능을 가지지 않고 주변 프로그램의 복제 기능으로 자신을 복제시키는 프로그램이 그것이었다.

최종적으로는 기생충과 같은 이런 프로그램에 기생하는 초기생 프로그램이 생겨나 프로그램의 크기가 23바이트까지 줄어들었다. 80바이트를 23바이트로 줄이는 것은 슈퍼컴퓨터로도 불가능한데, 한정된 공간과 처리시간을 서로 차지하려는 경쟁이 그런 괴물을 만든 것이다.

만약 제노봇도 4세대에서 자기복제를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복제를 이어간다면 그 같은 돌연변이를 탄생시킬까.

 

이성규 객원기자 ㅣ 2021.12.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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