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상 다양한 생명체들은 숱한 세월 동안 생존에 최적화된 특성을 갖추도록 진화했다. 과학자들 그런 생명체들에게 영감을 받아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키고 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11일 표지에 ‘불가사리’로부터 영감을 받은 과학자들의 연구를 실었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하버드대, 보든대 공동연구팀은 불가사리의 다공성 골격 구조를 모사한 세라믹 구조를 만들어 ‘사이언스’에 이날 발표했다.
다공성 구조는 벌집과 같이 수많은 작은 구멍(기공)이 난 구조를 일컫는다. 다공성 구조는 가볍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같은 소재, 같은 크기의 구조물이라도 작은 구멍이 난 덕에 무게가 덜 나간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다공성 구조는 자동차, 항공우주 분야에서 많이 활용된다. 차체가 가벼우면 연료를 훨씬 적게 쓸 수 있어, 경제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특히 세라믹 소재로 다공성 구조를 설계하는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세라믹 소재는 금속과 고분자물질보다 고온과 부식에 잘 견뎌 우주선과 첨단 자동차의 소재로 주목받고 있으나, 파손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연구팀은 가벼우면서도 고강도의 세라믹 재료를 개발하고자 다양한 해양동물을 탐색하던 중 불가사리의 특이한 골격 구조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인도양과 태평양 지역에 서식하는 일명 초코칩불가사리(Protoreaster nodosus)에 주목했다. 이 불가사리의 몸 곳곳에는 원형의 초콜릿색 돌기가 나 있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이 불가사리의 골격은 탄산칼슘의 결정 형태인 방해석으로 이뤄져 있다. 일종의 천연 세라믹 재료로, 분필의 성분과 비슷하다. 이 소재는 분필과 같이 부서지기 쉬운 특성이 있지만, 불가사리는 단단했고, 유연성도 탁월했다.
연구팀은 이 불가사리의 골격구조를 분석한 결과, 소골이라 불리는 밀리미터(㎜) 크기의 수많은 골격으로 구성돼 있었다. 소골은 연조직과 연결돼 동물이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불가사리의 소골은 놀랍게도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균일한 격자를 이루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균일한 구조가 원자 수준에서의 단결정 구조와 같았다. 불가사리 골격구조 곳곳에는 패턴이 수정하는 영역도 발견됐는데, 연구팀은 이 영역이 격자구조가 파손될 때 균열이 커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불가사리가 이 같은 구조를 특정 방향으로 발달시켜 전략적으로 신체 특정 부위를 보호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다만 골격을 성장시키는 방식은 앞으로 더 알아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연구팀은 이 같은 골격구조를 3D 프린팅을 이용해 만들어 냈으나, 세라믹 소재를 이용하진 못했다. 아직 3D 프린팅으로 세라믹 소재를 인쇄할 기술이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불가사리의 골격구조를 더욱 자세히 밝히는 동시에 3D 프린팅 기술을 개선해 더 발전된 다공성 세라믹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링 리 미국 버지니아공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자연은 보통의 온도와 압력 환경에서도 주변 광물을 모아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낸다”며 “인간이 아직 달성하지 못한 기술이지만, 자연에서 발견되는 광물 구조에 계속 관심을 갖다 보면 언젠가는 그 같은 바이오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com) 서동준 기자 bios@donga.com 2022.02.13 06:18